[목멱칼럼] 진영논리로 감사원 흔들어서야

최재형 원장 놓고 정치공방
칭찬하던 與 돌변 볼썽사나워
자의적 잣대론 국민 설득 못해
  • 등록 2020-08-28 오전 6:00:00

    수정 2020-08-28 오전 6:00:00

[임병식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 부회장] “선비는 어느 자리에서나 간언을 권리요 임무로 삼았다. 정치가 도리를 벗어나거나 임금이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제라도 관직에서 물러났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외모와 언행에서 꼿꼿한 선비를 떠올리게 한다. “말이 없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누구보다 선과 공공이익을 위해 진지하게 곧을 길을 걸어가는 분.”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됐을 때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내린 평가다.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 그런데도 임명된 것은 선비적 기질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감사원장 인사는 적절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최 원장은 취임 이후 정권과 불화하고 있다. 월성원전 1호기 감사와 감사위원 제청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세간의 평가도 양분돼 있다. 민주당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만, 야당은 진영논리에서 비롯된 자의적 판단이라며 맞서고 있다.

여당은 25일, 감사 착수 배경과 감사 태도를 문제 삼았다. 앞서 7월에는 사퇴를 압박했다. 사실 민주당 의원들이 보이는 거친 공세는 불편하다. 임명 당시 상찬하고 추켜세웠던 것을 돌아보면 민망할 정도다.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감사원이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해 강압적 조사를 벌였다는 주장이 있다”며 각을 세웠다. 최 원장은 “국회 요구에 의한 감사다. 어떤 결론을 갖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공박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씁쓸하다.

감사 태도를 문제 삼는 건 어떤가. 감사에 착수한 이유(메시지)는 제쳐놓은 채 감사 태도(메신저)를 시비한다는 비판이 있다. 감사 초점은 조기 폐쇄가 정당했느냐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 폐쇄 예정이었다. 하지만 7000억 원을 들여 개·보수를 끝냈고, 2022년 11월까지 연장 운영될 예정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기 폐쇄했다. 이 결정이 합당했느냐를 따져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국회법대로라면 감사 결과보고서는 2월 말 나왔어야 하지만 9월로 늦춰졌다. 정치권은 감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탈 원전 정책이 탄력을 받거나 동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은 최종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정치적 공세는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적어도 감사원장을 임명한 대통령 인사를 존중한다면 그래야 마땅하다. “친 원전 쪽 논리로 감사에 임하고 있다”는 박주민 의원의 억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 원장 또한 정치적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언행을 삼갈 필요가 있다. “대선에서 41% 지지를 받았는데, 과연 국민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은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 그렇지 않아도 4.15 총선 이전에 결론을 내려던 시도는 오해를 받고 있다. 최 원장은 “감사원이 외부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되면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5개월 가까이 보완감사가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시각도 있다.

덧붙여 감사위원 제청과 관련 유연한 입장을 당부하고 싶다. 최 원장은 24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제청하라는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헌법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간과한 부분이 있다. 어디까지가 중립이며, 누가 판단할 권리를 갖는지다. 더구나 정무직공무원에 대한 중립 의무는 헌법이나 국가공무원법에 세부 규정이 없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최 원장 또한 감별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추천하면 중립, 청와대 추천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가.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게 민주주의다.

그동안 최 원장은 특정 정치 성향으로 입줄에 오른 적이 없다. 오히려 공직사회에 귀감이 돼왔다. 사법연수원 시절, 몸이 불편한 동료를 2년 동안 업어 출퇴근시킨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감사원은 앞으로 모든 감사에서 엄격한 잣대를 유지해야 한다. 여당 또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드릴 자세를 지녀야 한다. 우리 편만 옳다는 지독한 진영논리, 자의적인 잣대로는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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