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의료계에 '협상하자' 러브콜 보냈지만..반응은 '싸늘'

당·정, 의료계에 수련 특례·정원 조정 등 당근책 제시
의협, “의대 정원 감축해야 의정 논의 시작” 못 박아
의대교수들 "정부 태도 전향적 불구 전공의 복귀 난망"
대화 시작해도 첨예 갈등…의료개혁 ‘백지화’ 우려
尹탄핵정국에 현 정부 패싱..새 정부와 협상 기류도 감지
  • 등록 2025-01-12 오전 11:31:19

    수정 2025-01-12 오전 11:31:19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정부와 여당이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원점 협의와 함께 의대 교육 집중 투자, 전공의에 대한 수련 특례 등을 내세우며 의료계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실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취임 직후 당정이 이같은 당근책을 제시한 것은 1년째 접어드는 의정갈등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당장 2025학년도에 늘어난 의대 증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전공의 복귀뿐 아니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란 정국불안마저 암초로 등장하자 의료계가 현 정부를 패싱하고 차기 정권과의 대화를 저울질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계와 의학교육계에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정부 및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의료계와 대화를 재개하겠다며 정부에 사직 전공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특례 조항 신설 등을 요청했다. 이와 맞물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련 특례 조항 신설과 함께 의대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2030년까지 약 5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 후 일반의 신분으로 병·의원에 취직했거나 쉬는 나머지 1만여 명의 전공의가 원래 근무 중이던 병원, 같은 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전체 전공의 임용 대상자 1만3531명 가운데 출근 중인 전공의는 1173명으로 전체의 8.7%에 불과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사회1 분야 ‘주요현안 해법회의’를 열고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한다면 2026년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를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놓은 것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전 전공의·의대생 이탈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다. 여기에 김택우 회장이 의협 회장에 취임하면서 새롭게 의정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 ‘정부가 의대교육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곧바로 관련 계획을 발표, 의대 학생이 차질 없이 수업받을 수 있게끔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러브콜에도 불구 의료계, 특히 전공의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무엇보다도 정국이 불안정하고 정원 감축에 확신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협의에 나선 이후 곧바로 정부가 바뀌면 의대 정원 이슈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 또 전공의는 현재 의대 정원 증원 철회가 아닌 앞으로 몇 년간 의대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기존보다 많아진 의대생을 다시 예전 수준으로 줄이려면 2025년도에 늘어난 1497명 이상의 의대생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2026년 의대 정원을 증원 전인 2024학년도(3058명)보다 더 줄일 수 있다면 대화의 여지가 있겠지만 예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의대 교수들 역시 ‘정부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하지만 전공의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학회 이사장은 “각 병원 수련 파트에서도 얘기가 나오지만 전공의들이 대부분 수련 특례를 일종의 ‘자수 기간’처럼 보인다고 한다”면서 “겉으로는 사과하고 속으로는 지금 복귀 안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로 보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2~3년 버틸 생각을 하면서 이미 일자리를 잡은 전공의들이 많다”면서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주류인데 정부가 백기 투항하지 않는 이상 이들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강경한 태도 또한 전공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前) 대한의사협회 임원은 “현재 의협과 박단 회장이 전공의 단체행동의 이정표인데 지금까지 강경하게 이끌어왔던 박단 회장이 이 정도 선에서 대화에 나선다면 전공의 사이에서 그 여파가 만만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협이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의협은 지금까지 추진된 의료개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많은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던 논의가 한순간에 무산될 수 있어 정부가 가볍게 승낙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 등 의료계는 연내 정부가 바뀐다는 가정을 한다면 현 정부와는 협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새 정부와 원점에서 협상해야만 문제 해결이 용이할 것으로 판단하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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