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인공지능(AI)으로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까지 업황이 살아나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회사들의 제품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성능과 기술은 달라도 외관 모양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D램 등이 그렇다. 흔히 반도체 칩은 ‘검은색’의 사각형으로 만들어지는데, 왜 그런 것일까.
| 삼성전자가 양산한 QLC 1Tb 9세대 V낸드. (사진=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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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아주 작은 만큼 얇아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기 때문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해야 하는 존재다. 반도체의 ‘발열’은 최첨단 기술을 구현해야 하는 AI 시대에서 엔지니어들의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로 이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게 기업들의 과제다. 반도체를 만들 때 외관에서부터 취약점을 최소화해야 하려고 하는 이유다.
‘검은색’은 빛을 차단하고 열을 더욱 잘 방출하도록 한다. 보통 검은색은 열을 흡수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어서 ‘반도체 온도를 더 높이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검은색은 열 방출에도 탁월하다. 다른 색상보다 열을 더 잘 방출하다 보니 칩 내부의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해 고온에서 작동하는 반도체의 안정성을 유지시킨다.
반도체는 빛에도 민감한데 검은색이 빛을 잘 흡수해 줘서 반도체가 외부 빛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전자기파도 차단해 줘서 전기적으로도 내부 칩을 보호해 준다.
반도체 칩을 보호하는 패키징 재료는 주로 검은색 에폭시 수지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탄소가 포함돼 검은색을 띤다. 원재료가 검은색이니까 그대로 사용하면 되고 다른 원료를 넣어 다른 색깔을 구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이 있다. 에폭시 수지는 다른 재료에 비해 저렴해서 낮은 제조 비용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기업 입장에선 ‘가성비’도 좋고 여기에 성능까지 높일 수 있는 셈이다.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월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콘퍼런스 ‘GTC 2024’에서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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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네모난 이유는 반도체를 만드는 웨이퍼 모양과 관련이 깊다. 반도체는 원형의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네모 모양으로 칩을 설계하면 웨이퍼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각형은 다른 모양에 비해 정렬이나 포장 작업에서도 간편해서 공정 과정에서도 다루기 편리하단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외에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AMD·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등 시스템 반도체도 대체로 같은 모양이다. 엔비디아가 올해 양산을 목표로 하는 최신 AI칩 ‘블랙웰’을 살펴보면 큰 사각형 안에 여러 반도체 칩들이 비슷한 모양과 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