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윤 총장에게 1년여 만에 심경에 변화가 왔다. 윤 총장은 대검 국감에서 “퇴임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냐”는 거듭된 질의에도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 마디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후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국감장에서 윤 총장은 추미애 장관과 대립했다. “검찰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말은 국감장을 지배했다. 윤 총장은 조국 수사,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 와중에 억압받는 총장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다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지휘권 파동을 거치면서 확고하게 각인됐다.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민심은 그를 ‘대항마’로 여기고 있다.
공교롭게도 윤 총장을 정치판으로 불러 세운 것은 집권여당이다. 조국 사건을 분기점으로 갈라선 여권과 틈은 갈수록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정한 장관 후보자를 압수수색하고 나서자 여권은 윤 총장에게 반감을 드러냈다.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추미애는 노골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인사권을 배제하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윤 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들었다.
어제도 추 장관은 “검찰총장 언행과 행보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한 시간 뒤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을 눈치 보지 않고 수사하는 게 검찰 개혁”이라며 응수했다. 앞서도 그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게 ‘진짜 민주주의’”라는 말로 집권여당을 당황하게 했다. 묘하게 윤 총장은 얻어맞을수록 몸집이 커졌다.
윤 총장이 대선에 나온다면 현실은 만만치 않다. 먼저 국민의힘에 입당할 경우다. 아마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급격한 추락이 예상된다. 지금 누리는 지지율은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총장이란 이미지 때문이다. 게다가 부족한 정치적 경험과 일천한 정치적 기반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장외에선 잘나갔지만 현실 정치에서 추락한 고건, 반기문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만일 윤 총장이 현실 정치에 뛰어든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울타리 밖을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소신 있는 검찰총장으로서 마무리하는 게 낫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퇴임 후에는 본인이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정치 입문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자기영역을 끝까지 고수하고 존경받는 국가 원로가 필요하다”고 냉정하게 조언했다.
판사도, 검사도, 언론인도, 교수도, 기업인도 깔때기처럼 정치로 수렴되는 사회는 후진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찰총장 출신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낯설다. 그러니 여당도 더는 윤 총장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