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친인척 정보까지 등록해야하나"…은행권 과잉통제 확산 우려

우리금융 임원 친인척 신용정보 등록 추진
銀 “빈대 잡으려다 초가 태우는 과잉규제” 난색
친인척 범위 모호하고 소비자 선택권 제약 우려
일각에선 “제도 바뀌며 의식 높아지는 선순환”
  • 등록 2024-12-04 오전 6:00:00

    수정 2024-12-04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우리금융 그룹사 임원들이 친인척 동의를 받아 신용정보를 등록한다고 하는데 내가 당사자라면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친인척 중에 금융그룹 임원이 있다고 정보 조회를 동의해달라는 건 어불성설이다.”(A은행 부행장)

“친인척 대출이 문제가 아니라 부당대출이 문제다. 친척보다 가까운 지인, 지인보다 먼 친척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친인척이라고 정보 등록해서 ‘다른 대우’를 하는 것은 역차별이다.”(B은행 부장)


은행권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재발방지책이 ‘친인척 대출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나타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한 가운데 우리은행발 후속대책이 은행권 전체로 퍼질 때 ‘역차별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다.

은행권 일각에선 “친인척 관리감독은 견문발검(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식 과잉대응”이라며 난감해하고 있다.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는 건 은행권 지상과제이지만 ‘은행원 친인척’에 방점을 찍는 순간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가 터진 후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규제일변도’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인보다 먼 친척’인데 신용정보 등록?…은행 “역차별”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업계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 부당대출을 막을 후속대책이 은행원 친인척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업점, 본부 생활을 두루 거친 A은행 부행장은 “최고경영자(CEO)의 권위를 이용한 특수한 사례를 가지고 금융그룹 임원, 직원의 친인척 정보를 등록하라고 한다면 역차별이다”며 “신용정보까지 등록해야 하는데 내가 당사자라면 등록에 동의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지점장을 했던 B은행 부장은 “친인척 대출이 아니라 절차상 부적절한 부당대출이 문제의 핵심이다”며 “친인척 대출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미해결 난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부통제 강화’가 지상과제인 은행에서 이처럼 우려 목소리를 내는 건 임직원 친인척에 대한 시스템적 통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금융은 그룹 임원 동의를 받아 친인척 신용정보를 등록하고 대출 취급 시 처리지침을 마련했다.

가장 중요한 건 ‘친인척’ ‘이해관계자’ 범위를 특정하는 것이다. C은행 차장은 “친인척은 혈연, 혼인을 통해 이뤄진 친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인데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친인척을 몇 촌까지 정의해야할지 지침이 없다”며 “예를 들어 4촌 이내라고 특정하더라도 우리나라 가족문화 변화상 이해관계가 밀접한 친인척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실제 친인척 여신관리체계를 강화한 은행에서도 은행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다. KB국민은행은 임직원 본인과 배우자, 각각의 직계 존·비속, 그리고 이들이 CEO로 있는 법인대출에 대해 전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임직원이 경조사 등 직원 복지를 위해 인사관리 시스템에 등록한 가족 정보를 업무 프로그램에 연동해 가족 가능성이 있으면 ‘주의’ 팝업을 띄우고 있다.

하나은행은 가족과 친인척 예금을 관리할 때 반드시 다른 직원이 알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윤리강령을 정해 놓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각사마다 가족과 친인척,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은 각 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문제다”며 “가까운 가족, 이해관계자라는 것 자체가 추상적이고 개인마다 ‘가깝다’는 울타리의 범위도 다르다”고 말했다.

사고 터지면 규제강화 일변도 대응 반복

가족문화에 대해서도 사회적 통념이 달라지고 있는 와중에 친인척 대출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은행에 다니는 친인척이 있다고 통제를 한다는 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친인척 동의 없이는 임원 달기가 어려워지는데 그 누가 임원을 하려고 하겠나.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조처다”고 했다.

친인척 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역차별 논란도 불거질 수도 있다. 특정 은행의 대출상품이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데도 임직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면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은행권 규제가 ‘금융사고→과잉규제→규제완화’로 이어지는 악순환과 함께 사고가 난 이후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규제 강화 대응으로 오히려 규제만 복잡해질 뿐 조직문화는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다만 친인척 신용정보를 등록하는 고강도 조치의 취지가 금융사고를 막고 임직원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데 있는 만큼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원은 채무보증, 사적금전대차가 안 되는데 오히려 이런 제도적 제한이 은행원의 온정주의를 타파하고 윤리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우리금융의 조처는 그만큼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고 했다. 제도가 관행으로 이어지고 관행이 개개인의 인식으로 자리 잡아 조직문화가 개선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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