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표적인 패션브랜드 버버리(BURBERRY)는 90년대 후반 전격적인 리브랜딩에 들어간다. 반세기 넘도록 고정된 스타일을 고집, 구식 이미지가 팽배해지면서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버리는 일단 회사명을 버버리 가문의 잔영이 드리워진 'Burberry's'에서 현대적인 느낌의 'BURBERRY'로 변경한다. 여기에 전통 체크무늬를 변형, 젊은층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밝고 가벼운 색상을 파격적으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전통적인 핵심가치와 현대적인 가치를 결합한 내부의 혁신과정을 통해 버버리는 명품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재창출하며 제2의 도약에 나선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핵심 국정지표로 리브랜딩한 이후 사회 전체가 '공정' 신드롬에 빠져 있다. 정치권은 이런 저런 법안을 공정법안이라고 명명하며 부산을 떨고 있고, 관가는 각종 정책들을 공정의 틀아래 묶어 공정관련 제도라며 견강부회(牽强附會)식 홍보에 여념이 없다. 사정당국은 '공정의 칼'을 빼들어 공직인사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서겠다고 하고 인사청문회나 인사특채 파동에서 드러나듯 모든 가치 판단의 잣대는 공정의 '프레임'속에서 정리되고 있으니 가히 '공정 열풍'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온다는 점이다. 공정사회는 또 다른 국정 어젠다인 '친서민' 기조와 중첩되면서 '경쟁' 보다는 '분배'와 '복지'의 이미지를 더욱 짙게 풍겨 뉴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사회는) 기득권자에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직접적인 언명은 기존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 비쳐지며 정권의 지지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공정사회라는 담론이 인민재판식으로 흘러가면 안된다며 직접 경고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리브랜딩의 원칙은 비단 글로벌 기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정치권력의 리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브랜드가 기존의 핵심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정권 내부의 혁신에 대한 밑그림을 분명히 제시할 때 리브랜딩은 고객인 국민에게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내부의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고, 브랜드의 갑작스런 변경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리브랜딩은 정권에 반대하는 진영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찬성하는 진영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정권 내부에서부터 공정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뼈를 깎는 혁신을 어떻게 단행할지 정권차원의 제도화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공정의 가치가 이 정권이 처음 제시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실용'의 가치와는 어떻게 접목되고 '반부패, 특권없는 사회'를 표방했던 이전 정권의 가치와는 어떻게 다른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의 공정'이 기득권 때려잡기로 전락한 '노무현의 공정'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천착하려면 리브랜딩의 원칙에 따라 이를 뒷받침하는 마케팅 전략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공정의 외피만 뒤집어 쓴 철학 없는 정권'이라는 비판을 불식하고 공정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한 실용정권으로 고객인 국민에게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