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한화 무혐의 결정…공정위 '고발위' 악명 벗나

[한화 일감몰아주기 무혐의]③
미래에셋 총수 미고발 이어…
한화 일감몰아주기 무혐의 처분
'고발 위원회' 오명벗고 심의기능 강화
  • 등록 2020-08-24 오전 10:05:00

    수정 2020-08-25 오전 10:02:15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전원회의를 열고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공정위 제공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는 피할 수 없습니다. 법원에서 뒤집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대형로펌은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설득하고 했다고 한다. 일단 공정위 사무처에서 혐의를 잡고 조사에 착수한 뒤에는 공정위 제재를 피할 확률이 낮은 만큼 법원 소송을 통해 혐의를 벗는 게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당시 법원 1심 기능을 하는 전원회의는 ‘고발 위원회’로 불렸다. 사무처(검찰 기능)가 고발 의견을 제시하면 김 위원장은 위원 9명간 합의과정에서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가장 강력한 제재인 ‘고발’ 결정을 이끌어냈다. 칼날을 피해가는 기업은 드물었다.

특히 사회적 문제가 컸던 ‘갑을문제’와 ‘재벌 일감몰아주기’는 예외가 없었다. 빠른 시일내에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인 ‘공정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장에 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번번이 검찰 기소 또는 재판 과정에서 뒤집히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가습기 살균제 부당한 표시·광고 재심 건과 현대모비스의 대리점에 대한 거래상 지위 남용 건이다. 검찰은 공정위가 고발한 이 두 사건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법원 역시 과징금 등 행정처분에 대해서도 피심의인의 손을 들어줬다. 증거자료 불충분 등 공정위의 혐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삼성물산-제일모집 합병 관련 순환출자 고리 해소 결정에 대해 특검 조사를 받는 등 공정위 신뢰가 땅으로 떨어졌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임명됐고, 공정위의 제재 기능 회복을 통해 공정경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했던 시점”이었다면서 “애매했던 사건도 검찰이나 법원 결정을 받아보자며 강한 제재를 내리다 보니 법원 1심 기능을 하는 위원회 심의 기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반면 조성욱 위원장 취임이후 공정위는 많이 달라졌다. 김 위원장 시절 개정한 고발지침에 따라 사무처(검찰 기능)는 과징금이 부과되는 사건에는 대부분 고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전원회의에서 이를 뒤집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래에셋그룹의 일감몰아주기 건은 예상과 달리 고발 없이 과징금 제재로 결론이 났다. 미래에셋의 경우 계열사들이 박현주 회장 총수 일가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다. 그룹차원에서 11개 계열사들이 미래에셋컨설팅이 운영하는 골프장, 호텔을 이용하도록 했고, 결국 경영난을 겪었던 미래에셋컨설팅의 적자폭은 줄었다. 결과적으로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미래에셋컨설팅이 적자폭을 줄이지 못했다는 게 공정위 사무처의 판단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박 회장이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계열사들이 일감몰아주기에 나서라고 직접 지시를 내리거나 관여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고 총수 고발은 제외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여론이 두럽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고발을 할 경우 공정위 심판 기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한화 계열사의 한화S&C에 대한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황은 있지만, 총수 관여 및 그룹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일감몰아주기를 했던 증거가 없었다. ‘무혐의’ 처분이 나올 경우 국회, 시민단체 등에서 나올 반발이 뻔하지만, 위원회는 이를 감수한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결정에 대해 논란이 일 수밖에 없지만 사무처와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분리돼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 역시 공정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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