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운을 띄우고 여당이 전면에서 주도하던 개혁방안은 공무원노조의 집단행동을 고비로 안전행정부로 슬그머니 추진주체가 바뀌었다. 표심이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집권당은 도무지 자신 없는 듯 하고 제살깎기식 개혁작업에 공무원 집단도 몹시 불편해 보인다. 모두 한발씩 물러서며 핑퐁게임을 벌이는 모습. 당의 요청으로 개혁안을 마련했던 연금학회장의 성토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회와 정부가 오히려 개혁의 저항세력인 것 같다”
개혁은 3대 추진동력이 삼위일체의 화음으로 울려퍼질때 폭발적인 힘을 받는다. 대중의 전폭적 지지(Public support), 이해집단을 설득 조정할 수 있는 유인체계(Incentive mechanism), 일관되고 확고한 개혁 추진기구(Controlling sector). 물론 그 밑바탕에는 힘과 유연성이 조화를 이룬 정치력(Political power)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지렛대로 삼아 거세게 반발하는 이해집단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후 합의를 이끌어내는 치밀한 포석, 바로 개혁의 정석이다.
개혁의 구심점이 약하니 공론화의 과정은 원활치 않다. 김영삼정부 시절 대통령직속 노사관계개혁위원회나 김대중정부의 노사정위원회처럼 이해집단의 참여를 유도하는 필터링(Filtering)이 없다. 밀실에서 폐쇄적으로 마련한 방안을 전격 공개한 후 요식행위처럼 공청회를 열 뿐 공론화의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정치력이 부족한 정권이 개혁 추진의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채 당위 만으로 밀어붙이니 그 험난한 개혁작업이 힘을 받을리 없다. 폭탄돌리기식으로 힘 없는 특정 부처에 개혁방안을 전가하는 건 정권 차원에서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오도된 신호를 이해집단에 줄 수 있다. 당연히 저항의 빌미를 제공하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개혁은 본질상 미로(迷路)를 헤매는 과정이다. 푯대를 향해 전진 앞으로를 외치지만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엔 각종 장애물이 도사린다. 그 장벽을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정면 돌파하며 목표에 도달하는 건 순수한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을 먼저 공고히 한 후 원대한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과 정치력이 절실하다. 개혁의 실체적 내용 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이 공감대를 이룰때 개혁의 물꼬는 트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