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미로에 갇힌 개혁

  • 등록 2014-10-12 오후 7:00:00

    수정 2014-10-12 오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정경부장]개혁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투자 없는 기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듯 개혁 없는 국가엔 비전이 없다. 개혁은 그러나 이율배반적이다. 회피하면 나라의 미래가 없고 결행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해집단과의 전면전, 결집된 힘과 결사적인 저항.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선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운을 띄우고 여당이 전면에서 주도하던 개혁방안은 공무원노조의 집단행동을 고비로 안전행정부로 슬그머니 추진주체가 바뀌었다. 표심이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집권당은 도무지 자신 없는 듯 하고 제살깎기식 개혁작업에 공무원 집단도 몹시 불편해 보인다. 모두 한발씩 물러서며 핑퐁게임을 벌이는 모습. 당의 요청으로 개혁안을 마련했던 연금학회장의 성토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국회와 정부가 오히려 개혁의 저항세력인 것 같다”

개혁은 3대 추진동력이 삼위일체의 화음으로 울려퍼질때 폭발적인 힘을 받는다. 대중의 전폭적 지지(Public support), 이해집단을 설득 조정할 수 있는 유인체계(Incentive mechanism), 일관되고 확고한 개혁 추진기구(Controlling sector). 물론 그 밑바탕에는 힘과 유연성이 조화를 이룬 정치력(Political power)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지렛대로 삼아 거세게 반발하는 이해집단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후 합의를 이끌어내는 치밀한 포석, 바로 개혁의 정석이다.

대통령의 공언에도 여론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공무원연금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개혁 추진기구가 공고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역대 정권처럼 ‘셀프 개혁’이 문제다. 이명박정부시절 개혁의 때를 놓친 건 당시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무성의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9년 공무원연금발전위원회만해도 공무원집단이 주도하며 기득권유지에만 급급했다는 평을 받는다.

개혁의 구심점이 약하니 공론화의 과정은 원활치 않다. 김영삼정부 시절 대통령직속 노사관계개혁위원회나 김대중정부의 노사정위원회처럼 이해집단의 참여를 유도하는 필터링(Filtering)이 없다. 밀실에서 폐쇄적으로 마련한 방안을 전격 공개한 후 요식행위처럼 공청회를 열 뿐 공론화의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정치력이 부족한 정권이 개혁 추진의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채 당위 만으로 밀어붙이니 그 험난한 개혁작업이 힘을 받을리 없다. 폭탄돌리기식으로 힘 없는 특정 부처에 개혁방안을 전가하는 건 정권 차원에서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오도된 신호를 이해집단에 줄 수 있다. 당연히 저항의 빌미를 제공하고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통해 또는 청와대가 직접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공무원의 실질 고용주인 국민을 대신해 여야 정치권이 합의체로 주도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포퓰리즘이 극심한 브라질에서도 지난 2003년 룰라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마케팅하며 개혁작업을 이끌어냈다. 독일에선 좌파인 슈뢰더 정권이 지지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놓은 개혁안을 우파인 메르켈 정권이 이어받으며 일관성 있는 연금개혁을 이뤄냈다.

개혁은 본질상 미로(迷路)를 헤매는 과정이다. 푯대를 향해 전진 앞으로를 외치지만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엔 각종 장애물이 도사린다. 그 장벽을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정면 돌파하며 목표에 도달하는 건 순수한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을 먼저 공고히 한 후 원대한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과 정치력이 절실하다. 개혁의 실체적 내용 뿐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이 공감대를 이룰때 개혁의 물꼬는 트이는 법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태연, '깜찍' 좀비
  • ‘아파트’ 로제 귀국
  • "여자가 만만해?" 무슨 일
  • 여신의 등장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