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HBM4 조기 상용화하자”
5일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이날 SK하이닉스 본사인 경기 이천캠퍼스를 찾아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 송현종 코퍼레이트센터 담당 사장, 김주선 AI인프라 담당 사장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HBM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AI 메모리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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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이 이날 살핀 곳은 5세대 HBM(HBM3E) 8단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 최첨단 생산 시설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부터 HBM3E 8단 제품을 이곳에서 양산해 ‘큰 손’ 엔비디아에 공급해 왔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3E 제품을 납품하는 사실상 유일한 메모리 업체다. SK하이닉스는 더 나아가 HBM3E 12단 제품을 올해 3분기 양산해 4분기부터 고객사에 공급할 계획이다. 6세대 HBM(HBM4)은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6세대 HBM4는 기본 구조부터 5세대 HBM3E와 다르다. 이전 세대 HBM 제품은 ‘두뇌’ 역할을 하는 그래픽저장장치(GPU) 주변에 수평으로 HBM을 조립하는 패키징 기법을 썼다. 그러나 HBM4부터는 HBM을 GPU 위에 수직으로 쌓는다. 이때 주목할 것은 HBM 밑에서 받침대 역할을 했던 부품인 ‘베이스 다이’가 직접 연산하는 식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GPU와 HBM 사이에서 데이터가 오가는 속도와 효율을 더 높이겠다는 목적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6세대부터 베이스 다이의 성능 개선을 위해 TSMC의 로직 칩 초미세 공정에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로 이어지는 AI 가속기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미국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를, 6월 대만을 찾아 웨이저자 TSMC 회장을 각각 만나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종합반도체기업(IDM) 삼성전자는 일부 연산이 가능한 베이스 다이를 직접 만들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삼성만이 가진 ‘턴키’ 역량을 통해 6세대부터는 판 뒤집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라는 게 업계 평가다. 최 회장은 HBM4부터 경쟁사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미리 경고하고 나선 셈이다.
최 회장은 또 최근 글로벌 증시 변동성으로 제기되는 AI 거품론에 대해서는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만이 살아남아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울 때 일수록 흔들림 없이 기술경쟁력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이어 “최근 해외 빅테크들이 SK하이닉스의 HBM 기술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3만2000명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의 성과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묵묵히 그 믿음을 더욱 두텁게 가져가자”고 격려했다.
최 회장이 HBM을 넘어 AI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경영전략회의에서 그룹 차원의 AI 성장 전략을 강하게 주문했다. 이를테면 그는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주력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결정 이유를 두고 AI를 거론하면서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전력 문제가 불거질 것이기 때문에) 에너지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은 SK의 AI 밸류체인 구축을 위해 국내외를 돌며 전략 방향 등을 직접 챙기고 있다”며 “SK는 HBM, 퍼스널 AI 어시스턴트 등 현재 주력하고 있는 AI 분야에 더해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AI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라고 했다. 최 회장은 6월 말부터 약 2주간 미국에 머물며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인텔 등 주요 빅테크 CEO들과 연이어 회동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