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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도 A급 전범 분사 추진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6일 오오이시 이타루 편집위원이 쓴 ‘전후 80년에도 지속되는 야스쿠니 문제’ 기사에서 “전쟁지도자를 포함하지 않는 위령이라면 외교적 마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해결은 도조 히데키 등 (전범을) 분사해 야스쿠니 신사에는 거스를 수 없었던 군의 명령으로 사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장병만 위령하는 형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타루 위원은 A급 전범들을 분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최근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시선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앞서 우리나라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등재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조선인 강제노동을 포함한 전체 역사의 전시를 요구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포함한 추도식이 지난해부터 열렸고 일본정부 대표로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차관급)을 참석했다. 문제는 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일본이 ‘종전일’이라고 부르는 그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 이력이 확인된 것이다. 이후 이는 교도통신의 오보로 확인됐으나, 한국 정부와 유족들은 추도식 참석을 거부하고 별도의 추도식을 거행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참배문제뿐만 아니라 일본 측이 강제노역이나 강제동원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주요 이유였다.
이타루 위원은 “이 소동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참배라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오보였다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면서도 “한중은 총리나 외무장관뿐만 아니라 부대신(차관)이나 정부관급의 참배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허들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보수파의 대표격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 역시 A급 전범에 대한 분사를 추진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전 자민당 부총재가 지난해 출판한 ‘냉전 후의 일본외교’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일본유족회 회장이었던 고가 마코토와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했으나 논의가 구체화하기 전 테러사건으로 사망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를 해서 논란을 만든 나카소데 야스히로 당시 총리 역시 자신의 신사 참배가 논란이 되자, 이후 공식 참배는 물론 사적 참배도 유보했고 A급 분사를 추진했다고 일본유신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이타가키 다타시(A급 전범으로서 사형 된 이타가키 다케시로 대장의 차남)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이타루 위원은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보수주의 상징이 된 작금의 사태가 이상하다고도 꼬집었다. 보수성향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대표 주필이었던 와타나베 쓰네오 역시 생전 기고문에서 “A급 전범이 분사되지 않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권력자는 공식 참배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타루 위원은 자민당에 신흥정당에 빼앗긴 보수표를 되찾기 위해 더욱 야스쿠니신사 참배라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름철 참의원선거에서 득표력은 강해질지 모르겠으나 일본 외교에는 커다란 마이너스(-)”라며 “길을 잘못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47년 전 극비리 A급 전범 합사 추진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치요다구 구단키타에 있는 신사이다. 보신 전쟁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및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본군 전사자의 신위를 가지고 있는 영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 피해자와 같은 합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까지 합사돼 있으나 야스쿠니 신사는 이를 종교적 이유로 묵살하고 있다.
쇼와천황(일왕)은 그 이후 참배를 하지 않게 됐고, 이후 일본 왕실 누구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발길을 하지 않고 있다. 당시 궁내청 장관이었던 도미타 아사히코가 남긴 메모에 따르면 “A급 전범이 합사됐다”, “그때 이후로 참배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는 내용이 있어 당시 쇼와천황이 A급 전범 합사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된다고 이타루 위원은 지적했다.
그 후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공식 참배를 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했다. A급 합사를 계기로 쇼와천황이 참배를 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정당화하려던 자민당 내 보수당의 의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부의 공식행사로 격을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이에 한중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나카소데 당시 총리는 이듬해 공식참배는커녕 개인적인 참배도 하지 않았다. 고토다 마사하루 당시 관방장관은 “공식참배는 A급 전범에 대해 참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아 우리나라가 그간 해왔던 반성과 평화에 대한 결의가 오해와 불신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등 3명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왔으나 총리가 된 이후에도 신사 참배를 지속한 것은 고이즈미 전 총리뿐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2013년 참배 이후 한중은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도 ‘실망’과 ‘유감’을 담은 성명을 내자 이후에는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다. 대신 봄과 가을 제사, 그리고 일본이 ‘종전일’이라고 부르는 8월 15일에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라는 이름으로 공물을 봉납해왔다.
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의원 시절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일본총리로 선출된 이후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자민당 내 소수세력인 그로서는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심기를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자 아베’라는 별칭을 가지며 자민당 내 보수파 지지를 받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선 당시 일본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