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여전히 실업자가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건 그 만큼 미국 경제가 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나 의회가 추가적인 재정부양이 필요하다는 호소를 듣지 못한다면 아마 (우리 경제는 그)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 회복의 동력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미국 내 저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크리스 럽스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둔화하고 있는 고용지표 개선에 대해 이처럼 비관적인 진단을 내놨습니다. 알다시피 국내총생산(GDP) 3분의2 가까이가 소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국 경제의 특성 상 고용경기는 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그에 따른 소비경기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2일(현지시간)에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고용 보고서는 우울했습니다. 헤드라인 지표보다 세부 지표까지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는데요.
우선 고용 보고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헤드라인 지표인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9월에 전월대비 66만1000개 늘어났습니다. 이는 85만개였던 시장 전망치에 비해 18만9000개나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비농업 취업자수는 6월 이후 석 달 연속으로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데요. 6월에 사상 최대였던 480만개 증가를 기록한 뒤 7월 170만개, 8월 150만개 이어 이번에는 66만여개에 그친 겁니다.
이로써 미국 내 코로나19가 본격 창궐한 직후 3월에 140만개, 4월에 2080만개나 줄었던 취업자 수는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간 1140만개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코로나19 펜더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7개월 간 미국 내 비농업 취업자 수는 1090만개 정도가 줄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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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취업자 수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가동률이 높아지긴 했지만 고용을 예전처럼 다시 늘릴 여유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9월만 해도 사람들의 왕래가 다소 살아나면서 소매업종에서 14만2000개, 헬스케어와 사회복지에서 10만8000개, 레저 및 병원에서 31만8000개의 취업자 수가 늘어났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는 6만6000개 증가에 그쳤습니다.
물론 9월 실업률은 8.4에서 7.9%로 0.5%포인트나 개선되며 지난 4월 고점이던 14%대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까지 내려오긴 했습니다. 이는 8.2%였던 시장 전망치보다도 좋았구요. 그러나 실업률은 여전히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4%포인트나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실업률 하락의 배후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9월 중 구직활동을 포기하면서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진 사람 수가 무려 69만5000명이나 됐구요. 이 때문에 노동시장 참가율은 61.7%에서 61.4%로 오히려 0.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구직활동이 줄어드는 실업자로 잡히는 사람 수가 줄어든 겁니다. 이처럼 고용시장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그 만큼 경기 회복이 강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실업자 통계도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9월 중 일시적으로 해고된 사람 수는 전월대비 150만명 줄어 46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해고자 중 임시 해고 비율은 36%로, 이전 달의 45%보다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영구 해고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9월 중 영구 해고자 수는 34만5000개 늘어난 38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2월말에 비해 7개월 간 250만명 증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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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미국경제 내 고용 중 60~70%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이같은 영구 해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더 큰 충격입니다. 이는 500인 이하 임직원을 가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고용 유지를 위한 정부가 지원했던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이 8월 중순에 사실상 모두 소진되자 버티기 힘들어진 중소기업들이 일시 휴직이나 해고했던 인력을 영구 해고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고용 보고서에 비해 시의성이 높은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를 봐도 지난주 83만7000건을 기록하며 최근 몇 주간 100만건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계절적 요인을 배제한 4주 이동평균으로는 개선 추세가 아주 완만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달근로자 등 긱(Gig·임시직) 노동자나 자가고용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팬더믹실업보조(PUA) 신청도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최근 로열더치셀은 9000명 감원을 발표한데 이어 엑슨모빌과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도 대규모 감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업계에서만 향후 1~2분기 내에 최소 10만명 이상 해고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메리칸에어라인과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이 3만5000명 직원을 줄이기로 했고 디즈니도 테마파크 등에서 2만8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감원 계획을 내놨습니다. 그 외에도 식당과 크루즈 선박회사, 소매, 방산업체 등도 해고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9월 지표에 아직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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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부부문에서 둔화하는 고용 창출을 되살리고 중소기업들의 영구 해고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앞으로도 재정부양을 지속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앞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미국 정부가 경기 침체 초기에 특별 실업수당 지급과 개인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을 통해 고용을 늘리는데 성공했지만, 이후 의회로부터 추가 재정부양책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재정지출을 줄인 탓에 살아나려뎐 고용경기의 불씨를 스스로 꺼뜨렸던 아픔이 있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던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시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좋았지만, 경제가 필요로 했던 추가 부양엔 실패했다”며 “대규모 경기 침체기를 겪고 난 뒤 경기가 본격 회복하는데에는 평소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최근 미 하원 소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경기가 회복되는 동안 더 많은 재정 지원이 필요하며, 그런 재정정책의 힘은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며 “만약 연준과 의회가 함께 경제를 뒷받침한다면 경기 회복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로버트 S. 캐플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지난주 “지난 금융위기를 통해 가파르게 올라간 실업률을 끌어 내리는데 상당한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재정지원을 더 확대하고 연장한다면 (고용을 살려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얼마 전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은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 패키지를 가결시켰지만,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1조6000억달러 이상의 재정 부양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상원 공화당의 전향적인 자세가 없다면 11월3일 대통령 선거 이전에 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미 의회가 추가 재정부양책에 합의한다면 미국인들에 대한 추가적인 직접 지원금(=긴급재난지원금)과 특별 실업수당 지급, 주정부와 지방정부 지원 및 기업 지원 확대 등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힘이 빠지고 있는 고용시장에 다시 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고용경기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