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 레지던트 1명 지원..필수의료 추진 정책 무색

■내년 레지던트 1년차 과목별 지원 현황 결과
흉부외과 1명·방사선종양 0명..정형·정신과 등에 몰려
"중증질환 진료 전문의 부족 우려..필수의료 보상 보장돼야"
  • 등록 2024-12-17 오후 1:41:35

    수정 2024-12-17 오후 1:41:35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내년도 레지던트 모집 결과 기피 진료과의 지원율이 더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확대 등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꺼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처방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이다. 이대로라면 일부 중증 질환은 전문의가 진료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9일 접수가 마감된 레지던트 1년 차 과목별 지원 현황에 따르면 산부인과는 188명을 모집했으나 1명만 지원했다. 흉부외과는 65명 중 2명, 방사선종양학과는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기사와 무관함(사진=이데일리 DB)
이번 레지던트 모집은 총 3954명 중 314명이 지원해 8.7%의 지원율을 기록했는데 산부인과와 흉부외과, 방사선종양학과는 평균을 한참 밑돌았다. 기피 진료과로 알려진 소아청소년과도 206명 중 5명이 지원했으며 신경과 또한 117명 중 5명이 지원해 지원율이 평균보다 낮았다.

반면 인기 진료과의 레지던트 지원율은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정신건강의학과과 정형외과는 42명이 지원했으며 재활의학과와 안과 또한 각각 34명과 17명이 지원했다.

다만 인기 진료과 또한 사정이 녹록지만은 않다. 관계자들은 의료 현장을 떠났던 사람이 지원하거나 비인기 진료과 전문의가 개업하려고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로 인해 일부 지원자는 수련병원 교수보다 나이가 많다. 한 대학병원 수련담당 교수는 “이참에 투 보드(전문의 자격 2개)를 따려는 의사들이 지원하는 경우도 있고 의대만 졸업하고 사업하다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병원에 남아 진료하기보단 빨리 개업할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료계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한다. 체감되지 않는 필수의료 지원 정책과 강압적인 의대 정원 확대, 낙수 효과로 필수의료 담당 의사를 채우는 방식 등이 일부 진료과 기피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중증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의사가 늘어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의대 정원 확대는) 겨우겨우 버티던 의료분야에 말뚝을 박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인기 진료과로 쏠리는 현상이 더욱 커지면서 전문의 진료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대학원 예방의학과 A 교수는 “이대로면 주로 필수 중증 환자를 보는 전문의 시스템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인기과 전문의, 인기 많은 진료에만 쏠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부인과를 지원하지 않는 현상, 정형외과가 인기과로 분류되긴 하지만 소아정형외과를 외면하는 현상 등이 이에 속한다.

굳이 전문의를 하지 않아도 고수익이 보장되는 일부 진료만 하는 의사가 양산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국 의료계는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보상’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A 교수는 “일단 필수의료분야에 종사하는 게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대우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제일 먼저”라면서 “사법 리스크도 없애고 필수의료가 비필수의료에 비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이 높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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