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왜 하마스 1인자를 암살했나

헤즈볼라 사령관 사살 하루만에…軍긴장감 최고조
이란의 심장, 테헤란서 암살 단행…보복 불가피
확전 우려에 국제유가 상승…배럴당 80달러 근접
  • 등록 2024-07-31 오후 4:41:19

    수정 2024-07-31 오후 7:16:4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중동 정세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가 이란의 심장과도 같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을 당했다. 범행 배후로 이스라엘이 지목됐다.

이스라엘은 현재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하마스 및 레바논 헤즈볼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란까지 개입하면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란은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대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유가 상승을 비롯해 글로벌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이 예상된다.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운데)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오른쪽)와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외신들 “이란의 심장, 테헤란이 뚫렸다”

31일(현지시간) CNN방송,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성명을 내고 정치국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피살당했다며 이스라엘을 맹비난했다.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하니예는 이날 새벽 2시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을 통해 하니예가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테헤란에 있는 그의 거주지에서 이스라엘군의 급습을 받아 경호원 1명과 함께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또 “이번 사건의 원인과 규모를 조사하고 있으며 결과는 추후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습해 헤즈볼라의 고위 군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를 사살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하니예까지 암살을 당하면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외신들은 “하니예 암살은 헤즈볼라 사령관이 사망한 위태로운 시기에 발생했다.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란의 보안이 뚫려 치욕을 안겨줬다는 점, 즉 적군에게 심장을 내준 것과 같다는 점에서 보복 위험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NYT는 이번 공격은 이란 내부적으로도 최고지도자 등의 안전 의문을 불러일으켰다면서, 고위급 인사들이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하니예의 사망이 확인된 직후, 대응 방안 및 수위 등을 결정하기 위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를 긴급 소집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는 차치하더라도 이란 역시 보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향해 “테러 정권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이란은 주권, 존엄, 명성과 명예를 수호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언론을 통해 “하니예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보복 수위다. 이란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SNSC에는 IRGC 고위 지휘관들과 친이란 무장세력 네트워크를 총괄 감독하는 IRGC 산하 쿠드스군 총사령관 등이 참여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뿐 아니라 이란을 포함한 친이란 세력 전체와 무력 충돌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네타냐후, 휴전할 뜻 없음을 보여준 것”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의 골은 지난 4월 공격을 주고받은 이후 더욱 깊어졌다. 당시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은 수백개의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했고, 이후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에 보복 폭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이 45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타격해 긴장감을 높였다.

아울러 하니예는 하마스 측에서 휴전 협상에 참여해온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가 암살을 당했다는 것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휴전할 뜻이 없음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면전을 막으려던 서방의 외교전도 물거품이 됐다는 진단이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이날 하니예 살해를 “사악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며 “이스라엘은 평화를 이룰 의도가 전혀 없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공격은 가자전쟁을 지역적 규모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을 멈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지역은 훨씬 더 큰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최우방 국가인 미국도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백악관 대변인은 하니예의 사망 보도를 접했다면서도 “추가적으로 언급할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그 문제에 대해선 말씀드릴 게 없다”고 했다.

한편 하니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국제유가는 상승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시간으로 오전 8시 39분 기준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보다 1.39% 오른 배럴당 79.72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1.63% 상승해 배럴당 75.95달러에 거래됐다. 유가가 더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재발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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