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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이데일리가 만난 경찰들은 계엄 사태 이후 자의적 판단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경찰청 소속 간부급 경찰 A씨는 “워낙 현장이 많다 보니 자의적으로 판단해 조치를 하고 보고를 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지시를 받는 부하들도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이로 인해 윗선에 한 번 더 확인을 받고 조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와 맞불 집회가 이어지며 현장에 대규모의 경력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평소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라면 지휘부의 지시에 별다른 의심 없이 움직였겠지만, 이번 계엄사태 이후 지시에 문제점은 없는지 혹시 모를 법적 책임을 질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지 수차례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경찰들 사이 이 같은 분위기가 퍼지고 있었다. ‘상명하복’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지만 딱딱한 조직 분위기 탓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B(31)씨는 “경찰관 행동강령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며 “그간 젊은 경찰들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도 불만을 표출하진 못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짚고 넘어갈 건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서울 내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김모(39)씨도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시민들과 충돌하게 되는 기동대는 원래도 회의감이 많이 드는 곳”이라며 “조직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이번 일로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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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들은 이제 내부 조직 문화가 ‘상명하복’에서 민주적인 결정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관기 전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지난해 조직개편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현장 경찰들은 고통을 끊임없이 호소해 왔고, 이런 불신 역시 이러한 지휘부에 대한 불신에서 왔을 것”이라며 “현장 경찰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경찰 조직을 원상복구하고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찰 정치 중립’이라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022년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로 경찰 인사권에 막대한 힘이 생기며 경찰이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그렇기 때문에 경찰법 집행에 상당히 위축받고 국민에게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국을 폐지하고 현재 실효성이 없는 국가경찰위원회에게 힘을 실어주는 개혁안이 필요하다”며 “개혁을 통해 실효성을 가진 위원회가 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