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는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의 질문을 담당 기자들이 상세하게 답변드리는 ‘궁금하세요? 즉시 답해드립니다(궁즉답)’ 코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Q. 정부가 최근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자몽, 아보카도, 오렌지 등 6종에 할당관세를 시행했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과일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사실 가격이 제일 많이 오른 건 사과와 배 아닌가요? 사과·배는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 과일이기도 한데, 정작 할당관세 적용 대상에서는 왜 빠졌는지 궁금합니다.
| 29일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시민들이 배·사과 등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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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는 세관을 통과하는 화물에 매겨지는 세금입니다. 할당관세는 이 화물의 일정 물량에만 일시적으로 관세율을 낮춰주는 제도입니다. 즉 할당관세를 적용받으려면 기본적으로 관세가 부과되는 수입품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사과·배는 없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거쳐 농산물 시장은 개방됐지만, 사과·배 의 수입은 사실상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애초에 수입되는 물량이 없으니 할당관세를 통한 대책도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외국산 농산물들은 국내에 들어올 때 무려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적 없는 병해충을 가졌을 경우에 대비하는 건데요. 사과·배는 이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수입 전에 거쳐야 하는 동식물·위생검역(SPS) 조치를 완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이런 과정이 외래병해충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생길 막대한 피해를 사전에 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절차라고도요.
바꿔 말하면 최근 할당관세 물량이 조기 도입된 수입과일들은 이 관문을 넘어섰다는 의미입니다. 필리핀산 바나나, 미국산 오렌지 등은 이미 우리 식탁에 흔히 오르는 농산물이 됐죠. 이렇게 국민들에게 비교적 친숙해진 수입과일들에 세제 혜택을 주면서 성수품 수요를 대체하겠다는 게 정부가 발표한 설 민생안정대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과·배의 국내 생산 물량을 극적으로 늘릴 수 없기에 만든 우회로인 셈입니다.
사과·배가 금값이 된 건 지난해 날씨의 영향이 컸습니다. 봄에는 냉해와 우박의 피해를 입었고 여름에는 장마와 태풍, 폭염이 이어지면서 가을철 수확량이 뚝 떨어진 겁니다. 과일의 생산 주기는 1년 단위로, 그해 농사가 흉작이 드는 경우 그 영향은 이듬해까지 이어집니다. 농식품부는 최근 민관 합동 ‘과수 생육관리 협의체’를 구성해 신선과일에 대한 생육 관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사과·배 등이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을 때 주는 보험금의 기본 보장 수준도 50%에서 70%로 늘어납니다.
| 2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수입 과일인 오렌지가 진열돼 있다. 과일 가격 강세가 지속되자 지난 19일 정부는 바나나, 오렌지 등 수입 과일 6종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관세율을 오렌지는 10%, 나머지는 0%로 각각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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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일각에서는 사과·배 수입 빗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농가 보호를 위한 비관세장벽인다가, 이제는 소비자 선택권 차원의 고려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통상 질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미국 등 신선과일 주요 수출국들의 시장 개방 요구도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사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이미 8년 전 보고서를 통해 “신선과일은 대부분 품목에 대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 병해충을 근거로 대부분 주요 수출국을 수입금지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사과를 수입할 경우 직접 타격을 입는 국내 농가의 반발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사과·배는 소주, 라면처럼 서민 식품이라는 이미지가 있다”며 “사람들이 예전보다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소비한다고 해도, 정부가 사과·배 가격 잡기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성수기 2주 차인 내달 1일까지 정부 공급 물량의 60% 이상인 4만4000t의 사과·배를 집중 공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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