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불던 지난 10일 오후 5시 30분 이태원. 옷깃을 한껏 여민 채 큰 붓을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자 흑(黑)빛의 공간이 시작됐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북적이는 홀을 지나 한쪽 벽을 밀자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바로 교촌필방의 치킨 오마카세, 이른바 ‘치마카세’존이다.
| 이태원 교촌필방 앞.(사진=김혜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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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먹처럼 보이는 검은 벽면을 뒤로 한 김영균 셰프가 환하게 웃으며 손님을 맞았다. 앞에는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정돈되어 있다.
하얀 광목으로 만들어진 작은 주머니를 열어보니 일회용 물티슈와 가글액, 머리끈, 치간칫솔이 들어 있다. 작은 배려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묶으며 요리를 맞을 준비를 했다.
새 단장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바로 콘셉트다. 기존에는 일식당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메뉴가 주류였지만 좀 더 교촌만의 색깔을 찾은 느낌이다. 교촌치킨 하면 ‘붓으로 양념을 바른다’는 특징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교촌필방 인테리어는 붓과 먹으로 통일했으며 메뉴에서도 한식의 느낌이 한층 강해졌다.
| (왼쪽부터)맞이3종, 새싹삼 냉채& 닭가슴살, 토종닭콩피 & 목살 숯불구이.(사진=김혜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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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설명과 함께 첫 번째 요리인 ‘맞이 3종’이 등장했다. 먼저 잣 소스를 곁들인 삼색채소 닭가슴살 말이의 고소함이 입안을 감돌았다. 곧이어 오이를 곁들인 근위초무침이 새콤하게 혀 끝을 자극하고, 닭발과 닭연골을 끓여 만든 닭편육이 탱글한 식감으로 재미를 더했다. 짭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평소 편육을 좋아하지 않는 기자도 가볍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두 번째 메뉴인 새싹 삼 냉채와 닭가슴살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얇게 썬 닭고기에 인삼과 채 썬 과일과 채소를 싸먹으니 첫맛은 씁쓸하면서도 부드럽게 조리된 닭가슴살과 청귤향이 가미된 배가 입안을 깔끔하게 만들어줬다. 교촌은 청귤을 활용한 치킨 레시피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현재 이태원 매장에서만 청귤치킨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세 번째 메뉴는 토종닭 콩피와 목살 숯불구이다. ‘콩피’는 프랑스 조리법 중 하나로 저온으로 가열되는 기름에 식자재를 오랫동안 넣고 끓이는 기법이다. 한입 베어문 순간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너무 부드러워서 깜짝 놀랐다. 접시에 깔린 가지 소스는 달큰하면서 부드러웠고, 함께 놓인 겉보리 소금도 독특했다. 목살은 그야말로 야들야들한 맛이 일품이었다.
| (왼쪽부터)속을 채운 닭날개 튀김, 특수부위 닭불고기, 치킨버거.(사진=김혜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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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온 속을 채운 닭날개 튀김은 토종닭 아랫 날개에 뼈를 발라내고 속에 새우와 송이버섯 등을 채워 튀겨낸 요리다. 작은 벼루와 붓이 함께 준비돼 직접 소스를 닭날개에 발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냥 베어 물어도 맛있지만, 허니 소스를 발라 먹으니 달콤짭자름 그 자체다.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는 오마카세와는 또 다른 재미로 함께 웃으며 먹을 수 있었다.
슬슬 배가 찰 때쯤 매콤한 닭불고기가 등장했다. 경북 청송의 닭불고기를 모티브로 한 특수부위 닭불고기다. 닭의 안창살과 등살, 넙적다리를 칼로 다져 석쇠로 구워내 불향이 살아있다. 막걸리 식초로 버무린 미나리 겉절이는 식초 맛이 과하지 않아 채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등장한 요리는 치킨버거. 버거라고는 하지만 크기가 작아 ‘번’ 정도라고 보면 된다. 치킨버거는 닭가슴살과 연골을 함께 다져넣어 오독오독한 맛을 살린 패티와 된장소스가 잘 어우러진 한식과 양식의 퓨전요리다. 다음 요리를 위해 음식을 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독오독한 패티와 볶은 톳의 식감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 닭고기 영양솥밥 반상과 디저트(사진=김혜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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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메뉴는 닭고기 영양 솥밥 반상. 숯불에 구워낸 넙적다리와 죽순과 마, 표고버섯을 함께 넣은 영양솥밥, 매콤한 닭계장이 주요 메뉴다. 밥에 계란노른자와 양념장을 넣어 비빈 뒤 김을 싸서 먹으니 별미가 따로 없다. 닭계장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칼칼한 맛을 살렸다. 전반적으로 모든 메뉴의 간이 삼삼해 먹고 난 뒤에도 입안에 텁텁함이 남지 않아 신기했다.
왠지 더 먹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수저를 내려놨다. 치마카세의 마지막 마무리는 크림브륄레와 캐모마일 차다. 셰프가 직접 하나하나 크림브륄레를 정성스레 토치로 마무리했다. ‘디저트는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또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준비된 메뉴를 먹고 나니 어느새 1시간30분이 훌쩍 지난 시각. 지인과 도란도란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기엔 다소 짧게 느껴졌지만 ‘닭고기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구나’를 새삼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권원강
교촌에프앤비(339770) 회장님도 만족스러워했다는 교촌필방 오마카세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중 하루 2차례씩 진행된다. 인당 가격은 7만원이다.
| 김영균 셰프가 메뉴를 준비하는 모습.(사진=김혜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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