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저 하늘이 날 버려도 / 이 육체가 소멸해도/ 내 영혼만은 영원히 숨 쉬리 - ♪’ ‘바위 같은 걸음으로 / 빛나는 용기를 품고 / 혼자라도 한 걸음 한걸음 가야만 해 - ♪’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시라노’ 주인공 시라노가 부르는 넘버인 ‘거인을 데려와’ 가사 중 일부다. ‘거인을 데려와’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시인이자 무사인 시라노의 캐릭터성이 잘 녹아있는 넘버다.
| (사진=RG컴퍼니, 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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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공연에서 이 넘버가 울려 퍼진 뒤 객석에서는 큰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시라노 역을 맡은 최재림의 섬세한 감정 표현력과 탄탄한 발성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장엄한 사운드와 어우러져 감탄을 부른 것이다.
앞서 최재림은 컨디션 난조 탓에 지난달 20일 열렸던 공연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당시 최재림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자 제작사 측이 1막 종료 후 공연 중단을 선언하고 사과했다. 해당 사건 이후 최재림은 ‘킹키부츠’와 ‘시카고’ 지방 공연 출연을 취소하며 회복의 시간을 가졌으며 같은 달 25일 ‘시라노’ 무대에 복귀했다.
애초 그 사이 진행된 ‘시라노’ 공연 회차는 애초부터 같은 배역에 트리플 캐스팅된 조형균과 고은성이 번갈아 출연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최재림이 컨디션 난조로 ‘시라노’ 공연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회차는 단 1회차뿐이었다.
| (사진=RG컴퍼니, 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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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실존 인물인 에르퀼 사비니엥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희곡을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낮은 자들을 위한 영웅’이자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인 시라노의 명예로운 삶과 고귀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고 무대에 복귀한 최재림은 공연 내내 안정적인 가창력을 보여주며 일각의 걱정어린 시선을 날렸다. 정의롭고 패기 넘치는 무사의 모습부터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주위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는 예술가, 짝사랑하는 상대인 록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순수 청년의 모습까지, 시라노의 다채로운 면모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낸 연기력도 빛났다.
인기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극작가 레슬리 브리커스가 의기투합한 작품인 ‘시라노’는 2017년과 2019년 각각 초연과 재연으로 관객과 만났다. 이번이 3번째 시즌에 해당한다.
| (사진=RG컴퍼니, 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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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가진 ‘시라노’는 대대적인 대본 수정 작업을 거쳐 돌아왔다. 시라노 캐릭터는 기존보다 친근하고 유쾌한 면모를 부각해 누구나 곁에 있고 싶어하는 호감형 인물처럼 보이도록 했다. 아울러 록산은 주체성을 강화해 시라노와 같은 영혼을 지닌 여성으로 표현했고, 두 사람과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크리스티앙의 순수성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했다.
그 연장선으로 오프닝곡 ‘연극을 시작해’, 크리스티앙 솔로곡 ‘말을 할 수 있다면’, 시라노가 부르는 ‘달에서 떨어진 나’ 등 3곡의 넘버를 추가해 작품의 서사와 캐릭터성을 강화했다는 점도 주목 포인트다. 이와 더불어 이전과 달리 라이브 오케스트라를 운용해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어우러진 넘버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했다. 세트 규모와 화려함을 키워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와 시라노가 이끄는 가스콘 부대가 활약하는 전쟁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낭만 활극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극대화했다.
열정의 불씨와 순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진한 여운을 남기는 공연이다. 지난달 6일 새 시즌 막을 올린 이 작품은 대작들의 잇따른 개막 속에 예매율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최신 월간 뮤지컬 부문 티켓예매액 순위(서울 지역 기준)에서는 4위에 올라 있다. 공연에는 최재림·조형균·고은성(시라노 역), 나하나·김수연·이지수(록산 역), 임준혁·차윤해(크리스티앙) 등이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