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기업인들을 아무 때나 부르는 것은 국회를 더 비대하게 만들려는 폭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국회증언법)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오는 21일까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뿐 아니라 청문회에서도 수시로 증인 소환이 가능해지고, 기업의 비밀이 담긴 자료까지 모두 제출해야 하는 법을 두고 전문가들은 ‘입법부의 권력 남용’이라며 시행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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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김용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국회증언법은 기업인들이 국회로부터 서류 제출 요구를 받거나 증인·참고인으로서 출석 요구를 받은 경우에 개인정보보호 또는 영업비밀보호 등의 이유로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동행명령을 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애초 여당은 해당 법안을 포함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과 국회법 개정안 등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6개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14일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홍기용 교수는 “기업의 경영 전략과 기술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게 되면 결국 국가 경제를 망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는 “기업의 영업비밀이 경쟁 국가에 넘어갈 수도 있고 국회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악용될 여지가 있다”며 “이같은 법은 대놓고 산업 스파이를 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일갈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회가 기업 활동에 계속 관여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대재해사고 등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지만 기업을 불러 회사 전략을 말하라고 하는 등의 질의는 기업 활동에 막대한 침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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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이 국정감사뿐 아니라 안건 심의나 청문회에도 무조건 출석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동행명령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도 문제로 봤다. 조 교수는 “국정감사에 부르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범위를 넓혀 아무 때나 기업인을 부르는 것은 국회의 폭거”라며 “비대한 국회가 더 비대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진 교수는 “국회가 아무 때나 기업인들을 불러 질의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출석이나 서류 제출 요구를 어떤 목적일 때 가능하게 할 건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와 탄핵 정국으로 가뜩이나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같은 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올해 기업들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법은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법과 원칙을 위반하면 형사 고발을 하면 될 텐데. 국회까지 부르는 건 기업인들을 국회에 줄 세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번주 중 임시 국무회를 소집해 국회증언법 등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심의한다는 방침이다. 여당이 국회증언법을 두고 반대 입장을 보인 만큼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있지만, 이럴 경우 민주당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쓰면 야당에 의해 탄핵 소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조 교수는 “한 권한대행이 충분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거부권 행사가) 안 될 경우에는 영업기밀 자료 요구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거나 기업을 방어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만에 하나 내년 시행이 현실화할 경우 헌법소원 등의 카드를 거론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