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팔팔한데.." 노인 연령 올리고 정년 연장될까[이슈포커스]

아프고 나약했던 노인 이미지 변화
정년연장 연금개혁 세대간 상생 必
퇴직 후 인생 2막 재교육 고민해야
  • 등록 2024-11-05 오후 3:19:04

    수정 2024-11-05 오후 7:20:13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엔 노인단체부터 정부, 국회까지 함께 목소리로 내고 있어 기준 상향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반응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노인연령 기준 상향에서 그칠 게 아니라 충분한 제도 개선 준비작업을 통해 연금개혁부터 전 사회보장시스템까지 전면 개편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회는 5일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내년 초를 목표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년연장과 함께 노인 연령기준 상향도 함께 추진될 전망이다. 이날 조경태 격차해소특위 위원장은 “65세까지 정년 연장을 하자는 의견에 위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정년 연장과 관련된 법안을 내년 초 발의를 목표로 하고 세차례에 걸친 정책 토론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격차해소특위는 이달 중 1차 정책 토론회를 국회에서 가질 예정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격차해소특별위원장)이 지난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獨 비스마르크 기준 韓 바꿀까

노인 연령기준 65세는 1981년 노인복지법을 제정하며 만들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독일 초대 총리 비스마르크가 나온다. 독일은 당시 평균수명이 짧은 노년층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65세를 기준으로 2차대전 후 유엔(UN)이 65세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며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수명은 82.7세다. 게다가 의학기술 등의 발전으로 건강한 100세를 바라보는 이들도 늘고 있다. 65세부터 100세까지 35년 정도의 연령차이가 나는데도 이들을 모두 ‘노인’으로 묶는 건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지난 7월을 기점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70대인 사람이 100살까지 산다면 20~30년은 더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 시스템으로 감당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노인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다 보니 사회적 부양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초연금이다.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다 보니 조금만 지나면 월소득 300만원이 넘는 노인도 기초연금 수령 대상이 될 수 있다. 100% 세금으로 지급하는 만큼 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의 부담요인이 된다.

건강보험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에서 노인인구가 사용하는 급여비 비중이 44%(2023년)를 넘어섰다. 65세 이상 노인이 동네 의원에서 1만 5000원 이하의 진료를 받을 경우 본인부담은 1500원에 불과해 노인의 ‘의료쇼핑’은 사회적 문제로도 부각되고 있다.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이 정말 의료지원이 필요할 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윤종률 한림의대 명예교수(전 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장)도 “(기능 장애가 생기기 시작하는) 70대가 건강한 노화 대응을 위한 핵심 관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감안한다면 노인기준) 65세는 너무 빠르고 75세는 늦다. 70세가 적정하다”고 강조했다.

젊고 건강한 新노인 등장…시스템은 그대로

전문가들은 이번이 노인기준 연령 재조정의 기회로 보고 있다. 2015년 대한노인회에서 자발적으로 노인 기준을 70세로 상향 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공론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여건을 고려해 노동가동 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론 내리며 정년연장과 노인연령 상향조정 논의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으로 전망됐지만 사회적 논란만 야기한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지원 율촌 고문은 “2016년에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됐고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추가 정년연장 논의를 한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 호응이 크지 않았다”며 “(문재인정부의)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정년연장 등의)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만 했지, 언제까지 계획을 만들어야 한단 계획도 없었다. 그땐 노사정이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안을 넘기지도 않은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법적 노인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5세로 연간 1년씩 10년간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중요한 문제로 보고 검토해 나가겠다”고 바로 다음날 화답했다. 최근에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정년연장은 시대적 추세”라고 언급하면서 노인연령 상향, 정년연장 논의에 불을 붙인 상태다. 국민의힘 격차해소특별위원회는 5일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내년 초를 목표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노인 이미지도 변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가구의 연간 소득은 3469만원, 개인 소득은 2164만원, 금융 자산 규모는 4912만원, 부동산 자산 규모는 3억 1817만원으로 조사됐다. 당뇨, 고혈압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평균 2.2개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 질환도 없이 건강한 노인도 13.9%나 됐다. 건강하고 자산이 있는 신(新)노년층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다. 전문가들은 세대 갈등이 아닌 ‘상생’에서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또 인생 2모작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재교육도 필요하다고 봤다.

박영란 교수는 “(제도적으로) 아무리 뭘 만들어도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어 어떤 서비스를 받거나 해보려고 하면 체감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면 정작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하고 만다. 거동이 불편해도 기준에 미달하면 돌봄서비스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박 교수는 “국민연금개혁과 기초연금, 노인일자리사업, 주택연금, 민간기업에서 하는 퇴직연금제도까지 사회보장제도를 전면 재건축해야 한다”며 “여기엔 세대간 갈등이 아닌 ‘상생’이라는 세대 간 인식 개선부터 깔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시한 연금개혁안에는 세대별차등인상안이 담겼다. 미래세대를 위해 곧 연금을 받을 이들이 더 내고 조금 덜 받게 되면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제안했다. 하지만 소득보장전문가들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년연장 또는 계속고용의 경우도 청년과 노인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를 세대 갈등이 아닌 협력과 상생을 통해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지원 고문은 “제일 중요한 건 모두가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특히 자의든 타이든 평생직장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어떻게 보호해 줄건 지에 대해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평생 한 직장 또는 자영업에 종사할 땐 소득과 건강유지 등을 모두 보장받았지만 이탈하면서 모든 걸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돕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부양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고문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연령 상향조정인가를 놓고 각각에 맞는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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