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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례없는 속도의 금리인상이 이뤄지면서 시중은행 ‘예금 금리 5%’ 시대가 열리자,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 그래도 시중은행 예·적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는 ‘머니무브’ 상황에서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를 잇따라 올리면 저축은행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어서다.
여기서 문제는 저축은행의 주된 자금조달책이 예·적금이라는 것이다. 저축은행들은 대개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자금을 충당한다. 현재와 같이 은행의 예금금리가 높아지면서 자금이 은행 쪽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지속되면, 저축은행은 수신액 이탈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또 수신금리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예금금리를 올리면, 저축은행의 대출금리가 인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금 손실액을 대출로 매꿔야 하기 때문이다. 1금융권인 시중은행이 수신금리를 인상하면 2금융권인 저축은행 수신금리에 영향을 주고 연쇄적으로 자금조달, 대출금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비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판매하고 있는 ‘저축성보험’의 금리를 잇따라 높이고 있다. 지난 8월말 푸본현대생명이 연 4% 저축성보험을 출시한 이후 저축성보험 금리는 두 달 반만에 5% 후반대로 뛰었다. 타사 저축성보험뿐만 아니라 은행 상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보험사들이 고금리로 자금을 유치해야 하기 위해 너도나도 금리를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생명보험업계는 최근 금융당국에 예·적금 금리 상승 여파로 저축성 보험 해약이 늘었고, 가입자에게 적립금을 돌려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보유 채권 등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달하기도 했다.
2금융권의 우려와 같이 실제 시중 자금은 안전 금고로 여겨지는 시중은행에 몰리고 있다. 국내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은 지난달에만 48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10월 정기예금 잔액은 한달 만에 47조7231억원이 늘며 80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권은 복잡한 심경이다. 금융당국의 메시지가 이해되지만 한편으론 은행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금조달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점쳐진다는 점도 당국 요청에 흔쾌히 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은행권 관계자는 “앞서 금융당국의 은행채 발행 자제령에 맞춰 채권 발행을 최소화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은행들도 자금 조달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으로 올랐고 당분간 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당장 금리를 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 공시제’가 은행권 수신금리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도 관측된다. 금리의 구체적인 정보를 줄 세워서 전시하다 보니, 무리하더라도 예금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앞서 정부가 과도한 이자장사를 하지 말라며 대출금리에 비해 낮은 예금금리를 지적한 것과도 역설적인 메시지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예대금리차 공시에 영향을 받아 수신금리가 올라가는 영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수신금리는 은행 정책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며 “예대금리차 공시는 은행의 자발적인 경쟁 유도할 목적으로 도입한 거라, 자금시장 문제랑은 크게 관련지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