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The Buck Stops Here>

  • 등록 2016-06-21 오전 6:00:00

    수정 2016-06-21 오전 7:59:4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구조조정은 진검승부다. 선혈이 낭자한 백병전이다. 뼈를 깎는 고통, 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의 연속이다.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는 검투사는 그래서 그 결말을 너무 잘 안다. 자신이 휘두른 칼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언제든 자신을 겨눌 수 있다는 사실을. 외환위기 당시 이헌재가 그랬고 지금의 임종룡이 그렇다. 그들은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바로 사즉생(死卽生)의 결기다.

부실과 무능의 파노라마. 구조조정 실무라인은 오작동이다. 지휘관은 푯대를 향해 ‘진격 앞으로’를 외치지만 전사들은 좌고우면이다. 극도로 몸을 사리며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면피의 기술을 동원하는데 급급하다. 국책은행도 금융감독원도 금융위원회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기력의 팽배, 복지부동, 형식주의의 만연. 변양호신드롬의 확장판이다.

“몸바쳐 일하는 후배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변양호는 일갈한다. 이미 공직사회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루는 건 보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선의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후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린 결정의 잣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용되는 법. 검찰 수사도 감사원 감사도 국회 청문회도 모두 예측 불가능하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조준된 책임의 화살은 피할 길 없다.

감사원 감사는 특히 공포의 트라우마다.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재량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 걸리면 영락없다. 기획감사, 표적감사, 모두 정무적 판단이 내재된 정치감사다. 한 금융공기업 대표는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1∼ 2년마다 정기감사를 나오면서 이번엔 갑자기 5년전 내용을 들추더라. 예측불가능하니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원들은 극도로 몸을 사린다”

구조조정은 결단의 과정이다. 부실기업 매각과정은 단적인 예다. 채권단간 이해관계가 제 각각인 상황에서 채무재조정, 신규자금 투입, 제3자 매각 등 일련의 과정은 순간순간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한다.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헐값매각, 특혜시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는 면책의 불문율을 필요로 한다. 이는 곧 예측 가능한 감사다. 그래야 사후 책임의 압박에서 벗어나 복잡한 구조조정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면책은 책임체계의 명확한 정립을 전제로 한다.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원활히 작동할때 이뤄진다. 그 배후에는 공적 신인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있다. 위기 대응과정에서 각종 선택의 결과에 대해 포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트루먼의 모토,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이 지침으로 삼았던 바로 그 메시지다.

드라마틱한 위기극복의 역사에는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이 있었다. 클린턴은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 당시 “단임으로 끝날 수 있다”는 보좌진의 경고에도 구제조치를 밀어붙여 위기의 전이를 막았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부시는 부실 금융기관 구제금융결정과정에서 의회와 여론의 거센 반대에도 자신의 책임을 담보로 신속하고 일관성 있는 대응을 이끌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이익이지만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물론 녹록지 않다. 그러나 끊임 없이 밀려오는 선택의 순간에 책임 있는 리더의 분명한 언명이 없으면 참혹한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공직사회를 움직이기 어렵다. 험난한 구조조정의 여정에서 사즉생의 결기는 바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리더의 분명한 메시지에서 시작된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韓 상공에 뜬 '탑건'
  • 낮에 뜬 '서울달'
  • 발목 부상에도 '괜찮아요'
  • '57세'의 우아美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