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미국과의 FTA 선언은 노무현 경제정책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정치적 이념과 진영논리를 뛰어 넘는 실용적 접근의 백미였다. 정치적 계산법으로는 마이너스. 산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토끼만 잃는 격이었다. 농민 노동계 등 이익집단은 물론 열린우리당, 노사모 그리고 반미(反美)의 이념에 갇힌 재야진영의 극심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래도 노무현은 밀고 나갔다. FTA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반대하는 지지층 설득에 주력했다. 그해 3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과의 인터넷대화는 그 결정판. 그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좌파 신자유주의”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론의 틀 안에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현실을 해결하는 열쇠로서 좌파이론이든 우파이론이든 써먹을 수 있는 대로 써먹자”고 했다. 노무현식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정책실패의 자인에 따른 정치적 부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성역화된 이념의 틀에 갇힌 집단적 사고, 그에 따른 오기와 독선의 결과다. 그 이면엔 정략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고위관료를 지낸 한 인사의 평. “지지층의 이반을 우려하는 것 같다. 촛불주주들과의 단절 없이는 정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미 진보정책의 상징이 됐다. 지지층 유대와 결속의 매개다. 이를 기반으로 정권은 지지기반을 공고히 한다. 그 정점에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있다. 촛불주주인 시민단체 대표로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 초유의 정책실험과 운명을 같이 할 처지다. 경질이 녹록지 않을테고 그 자신도 이 같은 정치적 지형을 이용해 정책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경제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리 없다.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일은 모든 경제정책의 성공법칙이다. 실용의 눈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다진 노무현의 한미 FTA. 그와 같은 드라마틱한 반전이 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이 정권에서 보이지 않는 건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