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 등록 2018-07-09 오전 5:30:00

    수정 2018-07-09 오전 5:3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전문기자] 경제개발초기 한국경제는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 했다. 미지의 영역을 헤쳐나가기 위한 항법장치도, 난관을 헤쳐나갈 게임의 규칙도 모두 불분명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내 고도성장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건 각종 시행착오속에서도 정책기조를 현실에 맞게 빠른 템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유용성과 실용성, 경제정책의 생명이다.

1962년 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초장부터 난항이었다. 혁명공약인 자립경제달성을 위해 군사정부가 채택한 정책노선은 ‘수입대체형 공업화 전략’. 수입을 억제하면 해당 공산품을 만드는 산업이 활성화된다는 이론이다. 당시 유행하는 정책기조였다. 북한을 포함, 제3세계 대부분의 신생 개발도상국이 채택한 기본전략이다.

그러나 곧 한계에 직면했다. 자원도 없고 내수기반이 약한 국내 경제현실에선 공허한 울림일 뿐이었다. 성과가 나오지 않자 군사정부는 관료들만 닦달했다. 그해 9월 내자(內資)동원을 위해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은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물가폭등, 생산활동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무경험 없는 일부 군 실세와 학자들이 개혁을 주도하며 경제를 유린했다.

결국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월 연두교서에서 수출 진흥에 전력질주할 것을 선언한다. 집행 2년만에 실책을 자인하고 ‘수출주도 성장전략’으로 정책의 기본궤도를 180도 전환한 거다. 인적쇄신도 단행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겸비한 장기영을 경제부총리로 발탁했다. 그제야 경제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한국경제의 이륙이 시작됐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소득주도성장론이 여전히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 1년 만에 이를 주도했던 일부 참모진이 경질성으로 물러났지만 청와대는 정책의 궤도 수정에 부정적이다. 오히려 포용적 성장론과 방향이 같다며 물타기를 하는 듯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민낯에 분칠하는 모습이다.

생산성과 무관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획일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 지난 1년간 각종 정책들이 현실에 구현됐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빈곤층 소득은 역대 최저치, 고용대란 속 일자리 창출규모는 예년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모두 정책실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분명해 보인다.

정책기조의 전환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정부 스스로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자칫 정부의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념의 틀에 갇혀 시장과 교감 없는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는 건 경제를 파국으로 내모는 길이다. 현 정부가 계승하는 노무현정부도 막판에는 정치적 이념에 관계없이 한·미 FTA협정을 주도하며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교조화된 이념이 경직된 정책을 낳는다. 획일화된 정책이 시장을 왜곡한다. 설익은 경제모델을 성역화한 후 이를 현실에 억지로 적용하는 모습, 시장의 역습을 자초하는 일이다. 반백년전의 드라마틱한 반전처럼 정책이 과녁을 빗나갔다면 실책을 인정하고 신속히 경로를 전환할 일이다. 경제정책은 타이밍의 예술, 정책기조의 전환은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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