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200%’. 외환위기 당시 부실기업 판별기준이다. 별 근거는 없었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조차 정교한 분석 결과는 아니라고 자인했다. 당연히 산업별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잣대에 따라 기업들의 생사가 갈렸다. 일도양단(一刀兩斷). 구조조정은 신속히 진행됐고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1997년말 500%에 달했던 30대 그룹 부채비율은 2년만에 160%대로 뚝 떨어진다.
부담은 미래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지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명운을 가르는 용선료(선박 임대료)문제는 그 연장선이다. 이들 기업들은 외환위기 시절 부채비율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보유 선박을 대량 매각했다. 2000년대 들어 정작 해운업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드니 거꾸로 비싼 용선료를 내고 선박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거다. 고가에 장기로 계약 한 용선료 부담이 기업 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다. 재무 건전성에만 치중한 기업 구조조정의 아이러니다.
재무건전성에 치중한 기업 구조조정으로 산업 경쟁력을 상실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전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위기에 직면한 1970~80년대, 독일 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통한 연명책에 매달리다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은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설비를 줄이는데 급급하다 한국은 물론 지금은 중국에까지 밀리는 신세가 됐다.
사실 구조조정이 재무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건 관성의 법칙이다. 금융당국이 주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다.이헌재 금감위원장도 기업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구조조정의 역량을 집중했다. 지금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실물부문의 위기보다는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더욱 우려하는 것 같다.
임종룡 위원장은 구조조정을 손실분담으로 규정한다. 대주주와 경영진 ·노조·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이 각자 희생에 따라 손실을 적절히 나누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물론 대한민국 미래의 산업 지형도를 그리고 장기적으로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통합적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다. 구조조정의 사령탑으로서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서 구조조정의 방식과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부실 털어내기에 급급한 금융당국만의 근시안적 구조조정은 언젠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또 다시 미래의 성장동력을 훼손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