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보험업계 '집단 모럴해저드'

  • 등록 2016-07-21 오전 6:00:00

    수정 2016-07-21 오전 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전문경영인에 대한 보상체계는 단기실적에 연동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되는 리스크 관리에 투자할 유인이 크지 않다. 미래설계 보다는 눈앞의 실적 포장에 급급할 때가 많은 법이다. 주주는 그러나 경영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 같은 행태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 인센티브 구조의 왜곡, 정보의 비대칭성, 그에 따른 주주·전문경영인간 이익 불일치…. 전형적인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요즘 밤잠을 설친다.”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토로한다. 올해 유럽연합(EU)이 시행한 건전성감독기준 SolvencyⅡ,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 IFRS4 2단계…. 보험업계를 둘러싼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서 위기의 파고는 밀려오는데 이를 돌파할 묘책은 없기 때문이다. “자본확충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보험권이 저 물밑에서 요동을 치고 있다.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작년말 기준 보험사들의 보험부채(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는 96조원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 전체 적립금 565조원(작년 상반기 기준)의 6분의 1에 달하는 자본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은 위기의 전조다. EU 본사에 적용되기 시작한 지급여력제도에 따라 1조원의 자본확충 부담을 피하기 위한 독일 알리안츠 그룹의 고육책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경영환경이 급변하는데도 대부분의 보험사들엔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보험사만 잰걸음을 보일 뿐 대부분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금융공기업 대표를 지낸 K씨는 재임중 보험사 CEO들과의 모임에서 느꼈던 씁쓸한 감정을 이렇게 전한다. “위기 불감증이다.(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에 대해)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처럼 이야기하더라. 그때(2020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금융당국의 한 임원은 일침을 가한다. “IFRS4 2단계는 우선순위가 아닌 것 같다. 관심이 없다.”

이는 곧 지배구조의 문제다. 오너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는 교보 등 일부 보험사와는 달리 대부분은 월급쟁이 경영인 체제다. 25개 생보사중 16개사, 10개 손보사중 8개사의 CEO는 각각 내년과 내후년 임기를 마친다. 회계 발 대란이 우려되는 2020년까지 자리를 지키는 CEO는 거의 없다. 제한된 임기에 실적압박을 받는 이들에게 2020년 ‘머나 먼’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심모원려(深謀遠慮 )의 자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 모른다.

리스크에 일부가 아닌 다수가 동시에 올라탈때 오히려 위험은 분산되는 역설이 작용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금융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은 경험칙이다. 정부가 안전판을 깔고 후유증을 최소화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근저에 있으니 조직적으로 위험관리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바로 집단적 모럴해저드다.

비뚤어진 인센티브체계가 근시안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부추긴다. 위험관리를 무시한 조직의 리더가 보상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실의 늪에 빠진 씨티그룹의 리더 척 프린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CEO들의 맹목적 행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음악이 연주되는 한 모두들 춤을 춘다. 우리도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이젠 우리 CEO들은 무도회장을 빠져나와 미래를 바라볼때가 됐다. 집단적 리스크 관리의 부재에서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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