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잠을 설친다.”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토로한다. 올해 유럽연합(EU)이 시행한 건전성감독기준 SolvencyⅡ,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 IFRS4 2단계…. 보험업계를 둘러싼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서 위기의 파고는 밀려오는데 이를 돌파할 묘책은 없기 때문이다. “자본확충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보험권이 저 물밑에서 요동을 치고 있다.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작년말 기준 보험사들의 보험부채(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는 96조원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 전체 적립금 565조원(작년 상반기 기준)의 6분의 1에 달하는 자본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은 위기의 전조다. EU 본사에 적용되기 시작한 지급여력제도에 따라 1조원의 자본확충 부담을 피하기 위한 독일 알리안츠 그룹의 고육책이다.
이는 곧 지배구조의 문제다. 오너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는 교보 등 일부 보험사와는 달리 대부분은 월급쟁이 경영인 체제다. 25개 생보사중 16개사, 10개 손보사중 8개사의 CEO는 각각 내년과 내후년 임기를 마친다. 회계 발 대란이 우려되는 2020년까지 자리를 지키는 CEO는 거의 없다. 제한된 임기에 실적압박을 받는 이들에게 2020년 ‘머나 먼’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심모원려(深謀遠慮 )의 자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 모른다.
비뚤어진 인센티브체계가 근시안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부추긴다. 위험관리를 무시한 조직의 리더가 보상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실의 늪에 빠진 씨티그룹의 리더 척 프린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CEO들의 맹목적 행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음악이 연주되는 한 모두들 춤을 춘다. 우리도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이젠 우리 CEO들은 무도회장을 빠져나와 미래를 바라볼때가 됐다. 집단적 리스크 관리의 부재에서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시작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