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은산분리의 역설

  • 등록 2016-12-29 오전 6:00:00

    수정 2016-12-29 오전 8:28:53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모든 규제는 선의(善意)로 포장된다.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규제는 동원된다. 규제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은 그 앞에선 모두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그래서 규제는 이상의 덫에 갇히곤 한다. 선의로 출발한 규제는 의도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맹목적 환상은 비극을 잉태하는 법. 바로 규제의 역설이다.

“결국 은행이 주도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올초 사석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미래를 이렇게 단언했다. 은산분리(銀産分離)원칙을 신줏단지 모시듯 고집하는 정치권의 근본주의자들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불행히도 예견은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본인가를 마쳤지만 여전히 절름발이 출범의 우려를 낳고 있다. 고객 창출, 리스크 관리, 이를 위한 빅데이터 분석과 보안 시스템 구축 …. 투입해야 할 자금은한두푼 아닌데 이를 선도해야 할 ICT기업은 규제의 발목에 잡혀 더 이상 자본금을 늘릴 수 없는 처지다. 자칫 대주주인 금융기관의 자회사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운명. 무늬만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분리, 이른바 은산분리는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공정을 지향한다.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대규모 금융기관들을 통제하고 금융· 산업자본간 이해충돌을 막는 장치다. 반면 획일적이고 경직된 적용은 금융부문의 효율과 활력을 떨어뜨린다. 은산분리의 양면성이다.

국내 은산분리의 역사는 반백년이 넘는다. 1961년 경제개발 초창기, 정부는 소수 재벌들로부터 은행주식을 전량 환수하고 은행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전격 제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중개채널로 은행을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기업부문에 대한 은행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미국의 은산분리와는 조준 대상이 달랐다.

문제는 이 원칙이 점차 교조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봉자들은 ‘은산분리 완화는 곧 친(親) 재벌’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하며 논의 자체를 봉쇄한다. 은행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가 아닌 반(反)재벌 정서를 근간으로 규제 그 자체를 이념화하고 있는 꼴이다. 유례없이 강도높은 규제로 변모한 은산분리 원칙이 금융 현실과 점차 괴리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는 곧 은행을 바라보는 인식의 일단을 투영한다. 은행산업을 목적이 아닌 실물부문의 단순 보조 수단으로 치부한다는 얘기다. 은행산업 전반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정도니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관심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생태계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 핀테크의 결정판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선도국들은 이미 규제의 두터운 담요를 훌훌 벗어던진 채 저 멀리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출발선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IT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규제 사슬에 묶여 이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건 유감이다.

은산분리 원칙, 이젠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 재벌규제의 차원을 넘어 은행산업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전향적으로 풀어야 한다. 은행법 개정을 통한 전면적인 완화가 부담스러우면 국회에 계류된 특별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할 일. ICT기업의 일탈과 독주에 대한 우려는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으로 보완하면 된다. 본말이 전도된 단선적 규제로는 인터넷은행의 활성화도 핀테크 혁명도 은행산업의 발전도 모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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