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인 집행자 같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사석에서 후배 관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와대 지침에 따라 이 눈치 저 눈치보며 단순 기술자처럼 정책을 만들 뿐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관철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관료집단에 대한 청와대의 정책 관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그 정도가 부쩍 심해진 것 같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관료들을 철저히 다그치는 게 잘하는 일이라고 참모진 스스로 착각하는 듯하다. 물론 근저에는 엘리트 관료집단에 대한 불신도 자리잡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의 비주류 경제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이 대거 정책 포스트에 중용된 건 이 같은 인식을 투영한다.
당연히 관료사회의 무기력증은 심화되고 있다. 청와대 코드맞추기에 급급할 뿐, 운신 폭은 좁아지고 보신과 안일 복지부동은 점점 확산된다. 어쩌면 관료들도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은 없다. 정책의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일단 윗선 뜻을 고분 고분 따르는 게 최선의 생존전략일지 모른다.
고용감소의 역설에 직면한 최저임금 파격 인상, 약자의 처지를 되레 악화시키는 비정규직 제로정책, 투기광풍을 부채질한 오락가락 가상화폐 대책, 여기에 중소기업 신입사원 1000만원 보너스 정책까지…. 모두 눈 앞의 정책목적에만 급급, 무리하게 밀어붙인 청와대 참모진과 정책 하청업자로 전락한 관료들간 합작품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이를 ‘선택과 책임의 일치’라고 표현했다. 일을 추진하는 관료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책임 질 수 있어야 정책에 탄력이 붙는다는 거다. 청와대는 큰 방향만 정한 후 완급만 조절한 채 거의 간섭하지 않고 맡겨야 관료집단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정책환경은 조성되는 법이다.
불행히도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관료들간 심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청와대의 깨알같은 간섭에 관료들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이념의 푯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만 관료집단은 저 멀리 ‘헉헉’ 달리며 책임만 떠안는 모습이다. 관료사회의 우울한 자화상, 그에 따라 파생되는 정책실패의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