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금융개혁의 적들

  • 등록 2015-09-15 오전 6:00:00

    수정 2015-09-15 오전 6: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규제관료는 관성의 트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규제권의 행사는 이들에겐 힘의 원천. 본능적으로 규제를 유지·확대·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향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규제의 완화나 철폐는 반가울리 없다. 규제혁파의 바람이 일선 현장에까지 녹아들지 않는 건 규제집행자들의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다. 집단 이기주의, 심리적 이반, 바로 규제개혁의 함정이다.

“모든 검사과정에서 확인서와 문답서 징구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겠다” 지난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공언했다. NH농협금융 회장 시절, 현장에서 느낀 뼈저린 경험 때문인지 낡은 금융관행의 상징과도 같던 확인서 작성의 폐혜를 규제개혁의 첫 작품으로 제시했다.

사실 금융감독원 검사역들이 검사현장에서 강요하는 ‘확인서’는 금융사 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검사역들이 위법이나 부당행위에 대한 혐의를 잡았을때 해당 금융사 직원들이 사실관계를 문서로 작성해야 하는 일종의 자술서와 같다. 관련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하고 날인도 해야 하니 추후 금감원 제재심의 과정에선 증거자료가 될 수도 있는 법. 혐의가 있다면 검사역 스스로 물증을 확보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번거롭기 때문에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사 직원을 범죄 피의자처럼 다루는 전형적인 퇴행적 검사관행이다.

6개월이 흐른 지금. 검사현장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최근 만난 한 금융사 대표의 토로. “확인서는 없어졌는데 대신 의견서를 달라고 한다. 확인서가 의견서로 둔갑했을 뿐이다.”

‘의견서’는 검사과정에서 검사반장 명의로 교부된다. 작성주체는 다르지만 금융사 부서장들의 사인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향후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는 확인서와 다를 바 없다. 금융사 임직원의 권리보호기준까지 제정됐지만 처벌위주의 접근, 금융사 직원을 잠재적 범법자로 다루는 현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임종룡표(標) 금융개혁의 하이라이트는 규제혁파다. 수십년간 적폐로 쌓여 이젠 고질병이 된 규제 덩어리들에 대해 ‘절절포’(절대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를 외치며 메스를 들이댄다. 잔잔한 변화의 물결.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검사현장에서 확인서가 의견서로 슬며시 대체됐듯 편의주의적 검사관행은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금융개혁에 대한 일부 긍정적인 평가에도 현장의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규제관료들에게 규제권의 행사는 생존의 법칙이다. 이익은 자신들에게 돌아오지만 불필요한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금융사들에 전가될 뿐이다. 규제집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외부효과(externalities)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할 유인은 크지 않다.

이들에겐 오히려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이득이다. 재량권 행사에 따르는 리스크를 굳이 부담할 필요가 없다. 개혁의 시계추도 자신들의 편이니 좀 더 버티면 된다. 정권의 임기는 절반 가까이 남았지만 현실적으로 개혁의 골든타임은 데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모든 개혁이 마찬가지겠지만 금융개혁의 화살도 외부보다는 내부부터 정조준해야 한다. 대부분의 규제개혁은 저항하기 어려운 압력이 가해질때 이뤄지는 법. 개혁의 대상이 될 내부 규제집행자들이 칼날을 휘두르고 있으니 폭풍처럼 휘몰아쳐야 할 개혁의 바람이 미풍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절절포의 절절한 울림. 금융사들엔 아직까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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