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좀비기업과의 전쟁

  • 등록 2016-01-25 오전 7:00:00

    수정 2016-01-25 오전 8:46:15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 유도해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는 법이다. 그 기반이 되는 경제체제가 오작동하면 흐름은 달라진다. 자원은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쏠리고 경제 전반의 후생은 뚝 떨어지게 된다.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zombie company)이 퇴출되지 않고 오히려 양산되는 건 이 같은 경제 생태계가 왜곡됐다는 점을 투영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의 잿빛 영상들이 나사풀린 영사기의 필름처럼 휙휙 지나간다. 미국 금리인상→ 엔화약세에 따른 수출 둔화→ 기업 수익성 악화 → 기업 부실 급증→ 야당과 노조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개혁법안 →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 , 여기에 자본유출과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공교롭게도 2016년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그때 그 시절을 재연하고 있다.

물론 외환위기때처럼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떨어진다는 일각의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지금 실물경기의 흐름은 외환위기 직전과 비견될 정도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기업생태계는 이미 빈사상태.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유화 등 주력 업종은 초대형 부실의 늪에 빠져있고 신용지원이 없으면 파산하게 될 한계기업은 1990년대말 일본 수준(전체 기업의 14%)을 넘어서는 등 임계치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곧 그동안 당국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집착한채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부실기업 정리,산업재편을 도외시했다는 점을 반영한다. 이익집단에 포획된 정치권의 외압, 그에 따른 정책자금의 비효율적 배분, 보신주의에 빠진 채권금융기관들의 부실한 관리가 한 몫한 거다.정치금융과 관치금융에 짓눌려 자생력을 잃어버린 한국 금융의 우울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급격한 회복세는 오히려 독이 된 건 아닌지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성장세(2009년 0.7%→2010년 6.5%)가 경제 전반에 착시현상을 일으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점을 경기순환기의 일시적 후퇴로 오판하고 단기 대응책에 급급하다 기회를 잃어버린 1990년대 일본을 답습한 꼴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저서 ‘애프터쇼크(After shock)’에서 “눈 앞의 위기 극복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근본 원인을 방치하면 경제의 왜곡은 심화되고 위기는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지금 금융당국도 채권은행도 모두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4월 총선, 이듬해 대선 등 민감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내심 사회적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을 반길리 없다. 일단 부실기업 옥석가리기를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공언은 하지만 이미 정치권의 유무형의 압력에 이를 관철할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어쩌면 더욱 혹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지만 ‘축복된 재앙’으로도 불린다. 비록 미완(未完)에 그쳤지만 위기를 동력 삼아 구조조정을 밀어 붙여 경제가 일정부분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좀비기업과의 전쟁, 결국 위기를 지렛대로 금융당국을 넘어 정권 차원에서 명운을 걸 일이다. 구조조정은 기득권과 부담을 재편하는 과정. 치밀한 전략과 강력한 실천력을 넘어 정치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과감한 수술 없이 산소호흡기를 대는데 그치는 지금과 같은 우유부단한 부실기업 정리 방식으로는 경제회복도 경제생태계의 복원도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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