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기업구조조정의 정치학

  • 등록 2015-11-24 오전 7:28:08

    수정 2015-11-24 오전 7:28:08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구심점은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하지만 이 위원장이 구조조정 지휘부를 장악하고 과단성 있게 칼날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정권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구조조정의 의지와 필요성을 역설하면 강력한 돌파력으로 밀어붙이는 2인3각의 파트너십, 바로 경제리더십의 전형이다.

“ 지금은 위기다.” 최근 사석에서 만나는 경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 경제상황을 이렇게 규정한다. 기업부실이 위험수위에 직면해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의 배에 달하는 기업 부채는 이미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력산업들은 수조원대 부실로 빈사상태에 빠졌고 회생 가능성 거의 없는 한계기업(좀비기업)들은 우후죽순 양산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건 실증분석에서도 드러난다. KDI 분석에 따르면 전체 기업 자산 중 한계기업 자산 비중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6%대에서 2014년 10%대로 늘었다. 기업집단 내부는 부실의 늪에 빠져 썩아들어가는데 제때 메스를 들이대지 않아 경제체질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꼴이다.

물론 정부가 구조조정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정점으로 관계 부처 차관급이 참석하는 구조조정 협의체가 가동됐고 해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4대 부실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기준도 마련됐다. 금융개혁의 전도사 임 위원장은 언제부턴가 기업 구조조정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공명과 울림은 없다. 비장함과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자명하다. 관료들의 보신주의 탓이 크다. 정권의 시계추가 반환점을 돈 지금, 관료들은 더 이상 논란이 될만한 일은 벌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의 발목잡기도 한 몫한다.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실은 단적인 예다.

근원적인 문제점은 경제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정권 차원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파고를 헤쳐나갈 의지도 이를 관철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청와대의 태도는 미온적이고 시한부 경제부총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는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배제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은 이미 정권이 아닌 금융당국 차원의 과제로 격하(?)됐다.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난제를 특정 부처의 과제로 돌린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개혁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도 당연히 힘을 받지 못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임 위원장의 원맨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은 고통과 치유의 파노라마다. 일단 메스를 들이대 수술대위에 올리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회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반면 환부를 도려낼때의 두려움에 차일피일 미루면 상처는 반드시 곪아 터져 나중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법. 당장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 ‘폭탄돌리기’ 하듯 그 부담을 미래에 전가하는 건 전형적인 정치공학일 뿐이다.

경제리더십이 확고히 구축돼야 한다. 위기상황을 지렛대로 폭풍우처럼 밀어붙였던 외환위기 당시처럼, 구조조정 지휘부를 명확히 하고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힘을 실어줄 일이다. 목전의 선거 승리를 위해 이를 외면한다면 이 정부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위기는 어쩌면 위기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이 정부의 무신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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