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임종룡의 승부수

  • 등록 2016-08-29 오전 7:00:00

    수정 2016-08-29 오전 7:0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임종룡 금융위원장(이하 직책 생략)은 실용주의자다.이상에 얽매여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실리에만 치우쳐 명분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구조조정에 임하는 사즉생의 결기도 우리은행 매각을 위한 전략적 선택도 마찬가지다. 국·과장시절, 금융정책국과 경제정책국을 모두 섭렵한 특이한 이력이 이 같은 통합적 정책관을 형성했는지 모른다.

4전5기,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은 절묘했다. 예보 지분 51%중 30%를 4~8%씩 나눠 매각하는 쪼개팔기, 이를 통해 여러 대주주가 경영하는 과점모델의 구축, 잔여지분 21% 추후 매각…. 인수 후보자를 늘려 흥행에 불을 지피고 차후 지배구조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비현실적인 일괄매각을 고집하던 이전 방식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한 전략이다.

사실 임기초만 해도 임종룡의 머리속엔 우리은행 매각이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사석에서 토로했다.“우리은행 매각 문제는 나중에…” 정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에 집착하다간 정작 필요한 금융개혁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결정적일때 치고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공감대, 그에 따라 민영화의 명분이 고조되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과감히 승부수를 던진 거다.

그동안 우리은행 민영화에 진척이 없었던 건 정부의 의지 부족이 크다. 책임의 문제, 보신주의의 만연이다. 변양호 신드롬이 팽배한 현실에서 국부유출, 헐값매각 등 각종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대형 은행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은 없었을 터이다.

정치권과 이에 편승한 관료들의 암묵적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유사 공공기관들은 선거에서 이긴 정치세력들에겐 일종의 전리품.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행장으로, 감사로, 때로는 사외이사로 낙하산을 대거 내려보낼 수 있는 알토란 같은 대형 은행을 굳이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뚤어진 엽관주의의 폐해다.

불행히도 그 대가는 참혹하다. 정권마다 자행된 코드인사, 각종 인사개입과 청탁, 그에 따른 조직내 무기력. 민영화가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우리은행의 경쟁력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주가는 1만원선을 겨우 턱걸이하며 장부가의 3분의 1, 경쟁은행의 절반수준에서 맴돈다. 주인 없는 은행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문제는 이번 매각 작업도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이다.민영화 이후에도 과연 관치의 망령을 떨쳐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금융사 대표는 일갈한다. “정부는 단 1%의 지분만 있어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은행을 통제하려 한다. 설령 잔여지분을 모두 팔아 지분이 없어져도 지금의 국민은행처럼 우리은행을 그대로 놔둘리 없다.”

정부 지분 1%도 없는 국민은행 조차 관제은행처럼 정부의 인사개입이 일상화된지 오래다. 전신이 서민금융을 전담하는 특수은행이었던데다 2001년 합병 이후 끊임없는 관치의 잔혹사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비극적 관행이다. 15년간 정부 소유였던 우리은행엔 관제의 잔재가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형식적 민영화를 이룬다해도 정치권과 관료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다.

관건은 결국 관치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있다.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우리은행이 관치의 족쇄로부터 벗어나 자율경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물론이다. 이는 곧 지시와 통제가 아닌 자율과 책임의 금융관행을 정립하는 일과도 맥을 같이 한다. 우리은행의 실질적 민영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 임종룡표 금융개혁의 완결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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