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측은 전날 자정까지 협상에 임했다. 협상 막바지에는 타결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하림 측이 배당 제한과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등을 그간 요구했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경영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였다.
앞서 하림은 지난해 12월 HMM 지분 57.9%를 6조 4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써내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양측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하림 측은 매각 측이 보유한 1조6800억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와 주주 간 유효 계약의 5년 제한,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JKL에 대한 지분 매각 제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매각 측은 수용에 난색을 보이면서 반대했다. 결국 하림 측은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요구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주주 간 계약 유효기간도 협상 막바지에 철회했다. JKL 지분매각 제한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매각 측은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매각 측은 국내 유일 국적선사 매각을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최대 국적선사인 HMM을 매각한 후 다시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 건가. 정부와 국민이 또 책임을 져야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매각 측 내부의 갈등도 노출됐다.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입장 차다. 지난해 12월 우선인수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때부터 산은과 해진공은 삐걱였다. 공적자금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회수하려는 산은과 HMM의 산업적 중요도를 높게 보는 해진공 간 시각차 때문에 우선인수협상 대상자 선정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은 HMM 매각과 관련 “산업은행 안에는 해운시장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HMM을 매각해서 성공한 구조조정 사례로 만들고 싶은 인식도 일부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해운시장이 고점을 지나 저시장기로 접어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해진공의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HMM의 매각이 완료되면 해진공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이는 해수부의 산하기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조직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관련업계에서는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이후 HMM 해체론이 일기도 해다. 이런 탓에 ‘조직 논리’를 앞세운 해진공의 의사가 협상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수부 입장에서는 HMM이 매각되면 해진공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명분이 사라진다”며 “협상 과정에서 경영 간섭 의지도 엿보여 앞으로의 재매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