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렬
  • 영역
  • 기간
  • 기자명
  • 단어포함
  • 단어제외

뉴스 검색결과 296건

 ① 김도진 "전국 지점 650곳 불시에 방문…직원들과 점심 나누며 소통할 것"
  • [화통토크] ① 김도진 "전국 지점 650곳 불시에 방문…직원들과 점심 나누며 소통할 것"
  • 김도진 기업은행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에는 가을 서리처럼 해라) ‘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사람이 멀리까지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생긴다)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 있는 사자성어다. 지난달 말 취임한 김 행장의 마음가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다. 젊은시절부터 김 행장의 좌우명이었던 ‘지기추상’은 입행 32년 만에 행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 “행장까지 오른 건 몸에 밴 성실함 덕분”김 행장은 지난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1만3000명의 기업은행 직원을 이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다”며 “늘 내 자신에게는 서리처럼 대하자고 다짐하는데 잘 지켜지는 지는 모르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장 취임 후 2주간 책임감에 제대로 잠을 못 자 벌써 몸무게가 3kg 빠졌다고 했다. 실제 서리 대하듯 김 행장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술을 많이 마셔도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고 7시에는 출근해 자리에 앉는다. 행원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남들보다 빨리 출근해 먼저 일을 시작하면 출발선에서 한발 앞서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행장은 “행원 땐 지점장만 돼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행장까지 된 것은 아마 성실하게 생활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일이 있으면 늦게 퇴근하기도 하고 야간이나 주말에도 일했다”며 일중독자(워커홀릭)의 면모를 드러냈다.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부드럽다. 김 행장의 친화력과 소통능력은 ‘대인춘풍’에서 나오는 것 같다. 행장 인선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인선이 확정되자마자 노조를 찾아 함께 잘 해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명절 때마다 부하직원에게 선물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집사람이 선물하라고 사준 것”이라며 건네지만, 풀어보면 부하직원마다 색상과 종류가 달라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는 후문이다. 소탈한 성격도 그의 장점이다. 지점장, 본점 부장, 본부장에 이어 부행장에 올라서도 직원에게 격의 없이 다가가 “오늘 소주 한잔하자”며 소위 ‘번개’를 치곤 했다. 행장이 된 지금도 비슷한 행보를 이어갈 생각이다. 김 행장은 “임기 내에 전국 기업은행 650개 지점을 모두 돌아볼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방문해 회의석 상에 지점장과 직원을 불러모아 보고를 받으면 뻔한 얘기만 할 테니 불시에 방문해 점심 약속 없는 직원을 모아 밥 사주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14년 써온 조직편제...행장 되기 전까지 개편 구상‘인무원려 필유근우’는 김 행장을 전략통으로 만든 철학이다. 2014년부터 경영전략 담당 부행장을 맡으면서부터 먼 미래를 보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질문을 던지면 자료 없이도 바로 숫자를 던지며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오랜 기간 미래 전략을 고민한 결과다. 김도진표 개혁의 청사진은 이미 마련됐다. 그는 일단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중복인력과 업무의 과감한 통폐합, 대과·대부서를 지향하는 조직슬림화를 모토로 한다. 그는 “전임자들의 잘잘못을 떠나 오랜기간 같은 조직편제를 쓰다보니 부서·그룹간 이기주의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행장은 “14~15년간 써왔던 조직편제를 한번 바꿔야겠다고 생각해도 컨설팅 받고 고민하다 보면 행장 임기 마지막 연차가 된다”며 “작년부터 기획부, 본부조직, 지역본부, 경영실적 평가에 대한 제도변경 등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행장이 되면서 이같은 구상들을 수면 위로 올려 실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준비된 행장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기업은행은 오는 17일 조직개편안을 발표한다. ◇첫 영업일부터 현장 찾아...중소기업도 방문큰 전략은 이미 그렸고, 구체적인 전술은 현장에서 찾을 생각이다. 김 행장은 취임식에서부터 발로 뛰는 행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첫 영업일부터 시무식 대신 영업현장을 찾은 것도 이같은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특히 김 행장이 찾은 인천 원당지점은 2005년 개점 때 그가 첫 지점장을 맡아 2년6개월간 일했던 곳이다. 인천과 경기지역에 위치한 중소기업도 방문해 어떤 지원을 원하는지 가감 없이 들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과 현장 중심의 경영을 펼치겠다는 의미다. 김 행장이 카드사업부 마케팅부장 시절 사업을 따기 위해 폭설에도 불구하고 직접 차를 몰고 지방으로 향했다가 경부고속도로에서 밤새 꼼짝없이 갇혔던 일화는 아직도 마케팅 직원들에게 회자된다. 당시 사업을 결국 따냈다.원당 지점장으로 일할 때에는 사비로 지점에 TV를 달고 근처 국밥집, 떡집 홍보영상을 틀어 개설점포임에도 불구하고 동일 그룹에서 1등에 오르기도 했다. 현장을 중시하다 보면 답이 보이고 추진력도 따라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 봐서는 현장에서 필요한 게 뭔지 알 수 없다”며 “직접 찾아다니면서 현장 중심의 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를 마치는 3년 후의 기업은행 모습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기업은행 행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은행, 거래고객에게는 동반자 적인 은행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누구30년 넘게 기업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기업은행맨’이다.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 전략기획부장·카드마케팅부장·기업금융센터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14년부터 경영전략그룹장을 맡아 행내에서 전략통으로 꼽힌다. 그의 강점은 ‘강력한 추진력’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건강한 체력까지 갖추고 있어 행내에선 그의 별명으로 러시아 사람을 연상케한다며 ‘도진스키’라고 부른다. 그는 직원들과 격의없이 소통 하는것으로도 유명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일상적인 소식을 전하기도하는 그는 부행장 시절에도 댓글 하나하나에 일일이 답하는 소통경영으로 유명했다. △1959년 경북 출생 △대륜고 단국대 경제학과 졸업 △1985년 중소기업은행 입행 △인천원당지점장 △2009년 카드마케팅부장 △2010년 전략기획부장 △2012년 남중지역본부장 △2013년 남부지역본부장 △2014년 경영전략그룹장(부행장) △2016년 제25대 기업은행장 대담 = 송길호 금융부장 정리 = 권소현 기자 juddie@edaily.co.k
2017.01.16 I 권소현 기자
  • [데스크칼럼] 은산분리의 역설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모든 규제는 선의(善意)로 포장된다.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규제는 동원된다. 규제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은 그 앞에선 모두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그래서 규제는 이상의 덫에 갇히곤 한다. 선의로 출발한 규제는 의도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맹목적 환상은 비극을 잉태하는 법. 바로 규제의 역설이다. “결국 은행이 주도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올초 사석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미래를 이렇게 단언했다. 은산분리(銀産分離)원칙을 신줏단지 모시듯 고집하는 정치권의 근본주의자들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불행히도 예견은 현실이 되고 있다.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본인가를 마쳤지만 여전히 절름발이 출범의 우려를 낳고 있다. 고객 창출, 리스크 관리, 이를 위한 빅데이터 분석과 보안 시스템 구축 …. 투입해야 할 자금은한두푼 아닌데 이를 선도해야 할 ICT기업은 규제의 발목에 잡혀 더 이상 자본금을 늘릴 수 없는 처지다. 자칫 대주주인 금융기관의 자회사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운명. 무늬만 인터넷전문은행이다.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분리, 이른바 은산분리는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공정을 지향한다.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대규모 금융기관들을 통제하고 금융· 산업자본간 이해충돌을 막는 장치다. 반면 획일적이고 경직된 적용은 금융부문의 효율과 활력을 떨어뜨린다. 은산분리의 양면성이다. 국내 은산분리의 역사는 반백년이 넘는다. 1961년 경제개발 초창기, 정부는 소수 재벌들로부터 은행주식을 전량 환수하고 은행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전격 제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중개채널로 은행을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기업부문에 대한 은행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미국의 은산분리와는 조준 대상이 달랐다.문제는 이 원칙이 점차 교조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봉자들은 ‘은산분리 완화는 곧 친(親) 재벌’이라는 프레임을 형성하며 논의 자체를 봉쇄한다. 은행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가 아닌 반(反)재벌 정서를 근간으로 규제 그 자체를 이념화하고 있는 꼴이다. 유례없이 강도높은 규제로 변모한 은산분리 원칙이 금융 현실과 점차 괴리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는 곧 은행을 바라보는 인식의 일단을 투영한다. 은행산업을 목적이 아닌 실물부문의 단순 보조 수단으로 치부한다는 얘기다. 은행산업 전반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정도니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관심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생태계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 핀테크의 결정판이다. 미국·일본·중국 등 선도국들은 이미 규제의 두터운 담요를 훌훌 벗어던진 채 저 멀리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출발선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IT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규제 사슬에 묶여 이를 제대로 활용 못하는 건 유감이다. 은산분리 원칙, 이젠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 재벌규제의 차원을 넘어 은행산업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전향적으로 풀어야 한다. 은행법 개정을 통한 전면적인 완화가 부담스러우면 국회에 계류된 특별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할 일. ICT기업의 일탈과 독주에 대한 우려는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으로 보완하면 된다. 본말이 전도된 단선적 규제로는 인터넷은행의 활성화도 핀테크 혁명도 은행산업의 발전도 모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2016.12.29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불확실성과의 전쟁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불확실성은 시장의 가장 큰 적이다.경제주체들에게 불안심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시장은 오작동에 빠지는 법. 가계 소비도 기업 투자도 정부 지출도 모두 주춤한다. 불안심리는 불길과도 같다. 한번 번지면 웬만해선 잡히지 않는다. 불안의 공포 그 자체가 패닉을 현실화한다.불확실성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대내외 극심한 수요 부족, 정치 리더십의 붕괴에 따른 국정공백과 예기치 못한 미국 대선 결과…. 며칠전 한은 금통위의 화두는 불확실성이었다.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주열 총재는 ‘불확실성’이란 단어만 15차례 사용했다. 국내외 정치 불안이 불길이 되어 위기를 증폭하고 있다.불안심리의 확산은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를 통해 투영된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의 대규모 재정지출 공약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과 임박한 미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경기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과 달러화 강세. 주식·채권·원화는 트리플 동반 약세를 보이고 시장은 요동을 친다.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는 가뜩이나 허약해진 실물부문으로 전이, 경제를 동면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문제는 불확실성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심리를 잠재워야 할 경제사령탑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에 이미 흠이 난 유일호 부총리도 여야 대립으로 인준이 불확실한 임종룡 내정자도 모두 어정쩡한 상태다. 경제리더의 부재 속에 표류하고 있는 한국경제. 폭풍우는 밀려오는데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는 선장 없는 배의 신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12일 오전 11시55분. 이헌재 부총리는 신속히 움직였다. “경제는 확실히 챙기겠다.책임은 내가 지겠다.” 고건 총리와의 회동 이후 대국민성명을 발표한다. 금융기관장, 경제 5단체장과의 연이은 회동.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 해외 투자자들에겐 1000여통의 이메일을 보내 불안심리 차단에 적극 나섰다. 탄핵 당일 폭락하던 증시는 곧바로 반등했고 경제는 며칠 후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이른바 ‘이헌재 효과’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 결정이 내려진 5월14일까지 64일. 바로 그 탄핵 정국 기간 한국 경제는 표면적으로는 단절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경제운용 과정에서 리더십의 공백은 느낄 수 없었다. 후일 이헌재는 토로한다. “탄핵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시장’이었다. 당장 뭔가 터진 건 아니지만 ‘불안 심리’가 문제였다. 직접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는 곳마다 ‘시장은 끄덕없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지금의 국정난맥상과 12년전의 탄핵상황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건 정치리더십이 붕괴한 상황에선 유능한 경제사령탑 없이는 위기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1998년 1년 내내 이어졌던 클린턴 탄핵정국에서 재무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은 이렇게 회고한다. “경제에 대한 신뢰, 확신을 높이는 일은 행정부의 경제대변인 격인 재무장관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정답은 모두 알지만 각자 계산기만 두드리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하는 일은 물론 녹록지 않은 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건 유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경제부총리 임명만은 여야 합의로 신속히 진행할 일이다. 정치리스크가 더 이상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는 우(憂)를 범해선 안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잠재우는 첫 걸음은 결국 경제컨트롤타워의 구축, 바로 경제리더십의 복원에 있다.
2016.11.21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은행 무기력이 부른 '정치 낙하산'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한국 금융을 옥죄는 정치권력의 질주에는 거침이 없다. 각종 경영 현안에 대한 은밀한 개입과 간섭, 여기에 기관장 인선은 아예 노골적이다. 국책은행은 물론 정부 지분 1%도 없는 민간은행조차 이미 전리품이 된지 오래. 사실상 주인 노릇하며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든다.한시적 정치권력의 무책임한 집단적 배임이다.현기환(전 정무수석)의 낙하산 기착지를 둘러싼 내홍이 은행권을 흔들고 있다. 국민은행장에서 기업은행장까지 각종 설이 난무한다. 정치권발 각종 하마평, 형식적인 은행장 선임절차,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노조의 반발, 마치 각본을 짠듯한 낙하산 인사와 노조의 전격적인 화해. 인사철만 되면 흘러간 영상처럼 재연되는 한국 금융의 우울한 자화상이다.“한국 금융은 죽었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은행장은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은행장 자리가 얼마나 가볍게 보이면 이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성해 몸값을 높인 후 다시 은행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성공신화’. 비뚤어진 정치금융의 결정판,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사실 모든 낙하산 인사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내부 승진이 절대선이 아니듯 낙하산 인사도 절대악은 아닐 터이다. 적절한 외부 인재를 리더로 영입하는 일은 순혈주의에 물든 폐쇄 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법. 집단사고의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시각을 통해 조직역량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인사일 경우에 한한다. 검증되지 않은 인사의 낙하산 행렬. 그에 따른 결말은 참담하다. 홍기택(전 산업은행 회장)의 일탈은 비근한 예다.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직위에 상응하는 능력과 경륜, 인선에 따른 파장. 이에 대한 종합적 고민 없이 이뤄지는 나눠먹기식 보은인사는 해당 기관은 물론 금융산업 전체 질서를 파괴한다. 은행 낙하산 인사의 이면에는 두가지 복합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은행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력의 오도된 시각, 뒤틀린 욕망을 투영한다. 동시에 자생력을 잃어버린 은행산업의 부끄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어쩌면 은행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오랜 관치의 울타리에서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로 연명하며 경쟁력을 잃어버린 현실. 하지만 땅짚고 헤엄치기식 ‘돈장사’만으로도 적당히 누릴 수 있는 경영의 후진성. 이 때문에 누구를 행장으로 앉혀도 은행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는 정치권력의 안이한 인식이 낙하산의 봉인을 분별 없이 풀어헤치고 있는 셈이다. 보신에 급급한 은행권의 무기력한 행태는 이미 고질적인 적폐가 됐다. 전직 금감원 고위간부는 질타한다. “재량이 주어져도 당국에 먼저 가이드라인부터 달라고 한다.” 재량의 범위내에서 자발적으로 업무영역을 넓히고 혁신을 일으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오히려 사후책임을 의식해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정해달라며 당국에 매달리기 일쑤라는 얘기다. 관치에 깊게 물든 은행들의 생존법인지 모른다. 한국 금융이 살아나려면 무분별한 낙하산 관행을 타파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권력이야 전리품을 계속 향유하고픈 유인이 있겠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도는 있는 법이다. 그 이전에 은행 스스로 변할 일이다. 정치권에 만만히 보이지 않아야 감히 낙하산을 투척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게 아닌가. 창의와 효율, 전문성과 혁신 없이 기존 틀내에서 안주하려는 보신의 행태를 지속하는 한 은행의 미래는 없다.
2016.10.13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임종룡의 승부수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임종룡 금융위원장(이하 직책 생략)은 실용주의자다.이상에 얽매여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실리에만 치우쳐 명분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구조조정에 임하는 사즉생의 결기도 우리은행 매각을 위한 전략적 선택도 마찬가지다. 국·과장시절, 금융정책국과 경제정책국을 모두 섭렵한 특이한 이력이 이 같은 통합적 정책관을 형성했는지 모른다. 4전5기,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은 절묘했다. 예보 지분 51%중 30%를 4~8%씩 나눠 매각하는 쪼개팔기, 이를 통해 여러 대주주가 경영하는 과점모델의 구축, 잔여지분 21% 추후 매각…. 인수 후보자를 늘려 흥행에 불을 지피고 차후 지배구조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비현실적인 일괄매각을 고집하던 이전 방식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한 전략이다. 사실 임기초만 해도 임종룡의 머리속엔 우리은행 매각이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사석에서 토로했다.“우리은행 매각 문제는 나중에…” 정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메가톤급 이슈에 집착하다간 정작 필요한 금융개혁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결정적일때 치고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공감대, 그에 따라 민영화의 명분이 고조되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과감히 승부수를 던진 거다. 그동안 우리은행 민영화에 진척이 없었던 건 정부의 의지 부족이 크다. 책임의 문제, 보신주의의 만연이다. 변양호 신드롬이 팽배한 현실에서 국부유출, 헐값매각 등 각종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대형 은행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은 없었을 터이다. 정치권과 이에 편승한 관료들의 암묵적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유사 공공기관들은 선거에서 이긴 정치세력들에겐 일종의 전리품.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행장으로, 감사로, 때로는 사외이사로 낙하산을 대거 내려보낼 수 있는 알토란 같은 대형 은행을 굳이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뚤어진 엽관주의의 폐해다. 불행히도 그 대가는 참혹하다. 정권마다 자행된 코드인사, 각종 인사개입과 청탁, 그에 따른 조직내 무기력. 민영화가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우리은행의 경쟁력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주가는 1만원선을 겨우 턱걸이하며 장부가의 3분의 1, 경쟁은행의 절반수준에서 맴돈다. 주인 없는 은행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문제는 이번 매각 작업도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이다.민영화 이후에도 과연 관치의 망령을 떨쳐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금융사 대표는 일갈한다. “정부는 단 1%의 지분만 있어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은행을 통제하려 한다. 설령 잔여지분을 모두 팔아 지분이 없어져도 지금의 국민은행처럼 우리은행을 그대로 놔둘리 없다.” 정부 지분 1%도 없는 국민은행 조차 관제은행처럼 정부의 인사개입이 일상화된지 오래다. 전신이 서민금융을 전담하는 특수은행이었던데다 2001년 합병 이후 끊임없는 관치의 잔혹사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비극적 관행이다. 15년간 정부 소유였던 우리은행엔 관제의 잔재가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형식적 민영화를 이룬다해도 정치권과 관료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일종의 관성의 법칙이다.관건은 결국 관치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있다.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우리은행이 관치의 족쇄로부터 벗어나 자율경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물론이다. 이는 곧 지시와 통제가 아닌 자율과 책임의 금융관행을 정립하는 일과도 맥을 같이 한다. 우리은행의 실질적 민영화를 통해 금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 임종룡표 금융개혁의 완결판이다.
2016.08.29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보험업계 '집단 모럴해저드'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전문경영인에 대한 보상체계는 단기실적에 연동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되는 리스크 관리에 투자할 유인이 크지 않다. 미래설계 보다는 눈앞의 실적 포장에 급급할 때가 많은 법이다. 주주는 그러나 경영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 같은 행태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 인센티브 구조의 왜곡, 정보의 비대칭성, 그에 따른 주주·전문경영인간 이익 불일치…. 전형적인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다. “요즘 밤잠을 설친다.” 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토로한다. 올해 유럽연합(EU)이 시행한 건전성감독기준 SolvencyⅡ,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 IFRS4 2단계…. 보험업계를 둘러싼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서 위기의 파고는 밀려오는데 이를 돌파할 묘책은 없기 때문이다. “자본확충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보험권이 저 물밑에서 요동을 치고 있다. 2020년 도입 예정인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작년말 기준 보험사들의 보험부채(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는 96조원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 전체 적립금 565조원(작년 상반기 기준)의 6분의 1에 달하는 자본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은 위기의 전조다. EU 본사에 적용되기 시작한 지급여력제도에 따라 1조원의 자본확충 부담을 피하기 위한 독일 알리안츠 그룹의 고육책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경영환경이 급변하는데도 대부분의 보험사들엔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보험사만 잰걸음을 보일 뿐 대부분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금융공기업 대표를 지낸 K씨는 재임중 보험사 CEO들과의 모임에서 느꼈던 씁쓸한 감정을 이렇게 전한다. “위기 불감증이다.(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에 대해)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처럼 이야기하더라. 그때(2020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금융당국의 한 임원은 일침을 가한다. “IFRS4 2단계는 우선순위가 아닌 것 같다. 관심이 없다.”이는 곧 지배구조의 문제다. 오너가 직접 경영 전면에 나서는 교보 등 일부 보험사와는 달리 대부분은 월급쟁이 경영인 체제다. 25개 생보사중 16개사, 10개 손보사중 8개사의 CEO는 각각 내년과 내후년 임기를 마친다. 회계 발 대란이 우려되는 2020년까지 자리를 지키는 CEO는 거의 없다. 제한된 임기에 실적압박을 받는 이들에게 2020년 ‘머나 먼’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심모원려(深謀遠慮 )의 자세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 모른다. 리스크에 일부가 아닌 다수가 동시에 올라탈때 오히려 위험은 분산되는 역설이 작용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금융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결국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은 경험칙이다. 정부가 안전판을 깔고 후유증을 최소화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근저에 있으니 조직적으로 위험관리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바로 집단적 모럴해저드다. 비뚤어진 인센티브체계가 근시안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부추긴다. 위험관리를 무시한 조직의 리더가 보상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실의 늪에 빠진 씨티그룹의 리더 척 프린스. 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CEO들의 맹목적 행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음악이 연주되는 한 모두들 춤을 춘다. 우리도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이젠 우리 CEO들은 무도회장을 빠져나와 미래를 바라볼때가 됐다. 집단적 리스크 관리의 부재에서 금융시스템의 위기는 시작되는 법이다.
2016.07.21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구조조정은 진검승부다. 선혈이 낭자한 백병전이다. 뼈를 깎는 고통, 피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의 연속이다.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는 검투사는 그래서 그 결말을 너무 잘 안다. 자신이 휘두른 칼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언제든 자신을 겨눌 수 있다는 사실을. 외환위기 당시 이헌재가 그랬고 지금의 임종룡이 그렇다. 그들은 결연한 의지를 드러낸다. 바로 사즉생(死卽生)의 결기다. 부실과 무능의 파노라마. 구조조정 실무라인은 오작동이다. 지휘관은 푯대를 향해 ‘진격 앞으로’를 외치지만 전사들은 좌고우면이다. 극도로 몸을 사리며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면피의 기술을 동원하는데 급급하다. 국책은행도 금융감독원도 금융위원회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기력의 팽배, 복지부동, 형식주의의 만연. 변양호신드롬의 확장판이다. “몸바쳐 일하는 후배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변양호는 일갈한다. 이미 공직사회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루는 건 보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선의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후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린 결정의 잣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용되는 법. 검찰 수사도 감사원 감사도 국회 청문회도 모두 예측 불가능하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정조준된 책임의 화살은 피할 길 없다.감사원 감사는 특히 공포의 트라우마다.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재량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 걸리면 영락없다. 기획감사, 표적감사, 모두 정무적 판단이 내재된 정치감사다. 한 금융공기업 대표는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1∼ 2년마다 정기감사를 나오면서 이번엔 갑자기 5년전 내용을 들추더라. 예측불가능하니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원들은 극도로 몸을 사린다” 구조조정은 결단의 과정이다. 부실기업 매각과정은 단적인 예다. 채권단간 이해관계가 제 각각인 상황에서 채무재조정, 신규자금 투입, 제3자 매각 등 일련의 과정은 순간순간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한다.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헐값매각, 특혜시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는 면책의 불문율을 필요로 한다. 이는 곧 예측 가능한 감사다. 그래야 사후 책임의 압박에서 벗어나 복잡한 구조조정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면책은 책임체계의 명확한 정립을 전제로 한다.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원활히 작동할때 이뤄진다. 그 배후에는 공적 신인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있다. 위기 대응과정에서 각종 선택의 결과에 대해 포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트루먼의 모토,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이 지침으로 삼았던 바로 그 메시지다. 드라마틱한 위기극복의 역사에는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이 있었다. 클린턴은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 당시 “단임으로 끝날 수 있다”는 보좌진의 경고에도 구제조치를 밀어붙여 위기의 전이를 막았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부시는 부실 금융기관 구제금융결정과정에서 의회와 여론의 거센 반대에도 자신의 책임을 담보로 신속하고 일관성 있는 대응을 이끌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이익이지만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물론 녹록지 않다. 그러나 끊임 없이 밀려오는 선택의 순간에 책임 있는 리더의 분명한 언명이 없으면 참혹한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공직사회를 움직이기 어렵다. 험난한 구조조정의 여정에서 사즉생의 결기는 바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리더의 분명한 메시지에서 시작된다.
2016.06.21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부채비율 200%'의 부메랑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해운·조선 산업이 위기에 내몰린 원인은 복합적이다.경영진의 경영실패, 노조의 이기주의,채권단의 무사안일, 금융당국의 보신· 방관. 대주주는 물론 이해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전방위 모럴해저드의 합작품이다. 그 저변에는 외환위기 시절 정책실패가 자리잡고 있다. 부채 털어내기에 급급한 기업 구조조정. 재무 건전성에 치중한 근시안적 정책처방의 폐해다. 부채비율200%에 대한 맹신은 그 출발선이다. ‘부채비율 200%’. 외환위기 당시 부실기업 판별기준이다. 별 근거는 없었다.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조차 정교한 분석 결과는 아니라고 자인했다. 당연히 산업별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잣대에 따라 기업들의 생사가 갈렸다. 일도양단(一刀兩斷). 구조조정은 신속히 진행됐고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1997년말 500%에 달했던 30대 그룹 부채비율은 2년만에 160%대로 뚝 떨어진다. 부담은 미래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지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명운을 가르는 용선료(선박 임대료)문제는 그 연장선이다. 이들 기업들은 외환위기 시절 부채비율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보유 선박을 대량 매각했다. 2000년대 들어 정작 해운업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드니 거꾸로 비싼 용선료를 내고 선박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거다. 고가에 장기로 계약 한 용선료 부담이 기업 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다. 재무 건전성에만 치중한 기업 구조조정의 아이러니다.불행히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도 유사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자산매각을 통한 눈 앞의 부실털기, 구조조정 재원마련을 위한 백가쟁명식 논란, 채권단의 채무재조정, 국민혈세 투입.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각종 처방전이 제시되고 있지만 빈사상태에 빠진 해당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재무건전성에 치중한 기업 구조조정으로 산업 경쟁력을 상실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전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위기에 직면한 1970~80년대, 독일 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통한 연명책에 매달리다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은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설비를 줄이는데 급급하다 한국은 물론 지금은 중국에까지 밀리는 신세가 됐다. 사실 구조조정이 재무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건 관성의 법칙이다. 금융당국이 주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 결과다.이헌재 금감위원장도 기업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구조조정의 역량을 집중했다. 지금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실물부문의 위기보다는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더욱 우려하는 것 같다. 이는 결국 구조조정의 구심점이 재편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일갈한다. “금융위원장은 산업적 관점보다는 재무적 관점에 치중하게 마련이다. 산업재편에 대한 고민보다는 금융시장의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부처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임종룡 위원장은 구조조정을 손실분담으로 규정한다. 대주주와 경영진 ·노조·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이 각자 희생에 따라 손실을 적절히 나누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물론 대한민국 미래의 산업 지형도를 그리고 장기적으로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통합적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다. 구조조정의 사령탑으로서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서 구조조정의 방식과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부실 털어내기에 급급한 금융당국만의 근시안적 구조조정은 언젠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또 다시 미래의 성장동력을 훼손할지 모른다.
2016.05.12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금융 포퓰리즘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포퓰리즘을 표방한 정당의 원조는 미국 인민당(Populist Party)이다. 1891년 저소득 영세농민과 노조를 기반으로 민주· 공화 양당 체제에서 제3의 정당으로 우뚝 섰다.경제적 합리성과는 동 떨어진 환심성 정책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기존 정치지형을 흔들었다. 1916년 노스다코타 주지사 선거전은 그 분기점.이 선거에서의 승리로 주(州)를 장악한 인민당은 곧바로 은행을 설립한다. 미국 최초의 국영은행 노스다코타은행(Bank of North Dakota)의 탄생이다. 인민당은 대출확대에 전력을 다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공장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활이 열악한 영세 농민이나 자영업자가 대상이었다. 그 결과 저소득 계층은 흥청망청 손쉽게 돈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무차별적 대출 확대의 후유증은 참혹했다. 훗날 경제공황기 은행권 위기의 불씨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다.총선이 다가오면서 예외없이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퍼주기식 복지공약은 물론 선심성 금융정책이 난무한다. 여야 정치권을 넘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금융당국까지 열을 올리는 모습. 금융권의 팔목을 비틀어 대출규정을 완화하고 화끈하게 빚탕감을 공언하고 있다. 흘러간 레코드판의 유행가처럼 들린다. 대표적인 예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저소득계층 채무조정. 금융기관과 대출자의 모럴해저드, 성실 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등 그동안 논란이 많았는데 최근 금융위는 한발 더 나아갔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대해 원금의 90%까지 빚을 털어주겠다는 거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저소득·저신용 41만명의 부실채무를 아예 탕감해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대출이자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방안은 선거판 단골메뉴다. 새누리당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하향조정하겠다고 공언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우체국예금을 통해 중·저 신용자를 대상으로 10%대의 신용대출을 일으켜주겠다고 장담한다. 금융을 통해 구현되는 선심성 복지공약, 바로 금융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미국 최초의 국영은행이 포퓰리즘 정당에 의해 설립됐듯 금융은 언제든 포퓰리즘 정책의 기본채널로 전락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저소득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대중영합적 금융정책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법이다. 단기적인 재정부담 없이도 금융기관만 배후에서 옥죄면 마치 이들 계층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혜택은 즉각적, 비용은 미래에 교묘히 분산되니 근시안적 정치인들에겐 참 매력적인 카드다.금융을 통한 선심성 복지는 그러나 일시적인 진통제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처방전은 될 수 없다. 농어촌 부채탕감의 실패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 무분별한 부채조정은 채무자의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과도한 이자율 개입은 저신용 서민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초래한다. 대출자에게는 선거를 앞두고 버티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선한 채무자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 경제적 효율성과 형평성, 금융의 자기책임성과 신뢰성을 저해할 뿐이다. 복지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정책은 결국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활용할 일이다. 자원배분상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시장실패를 보정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무차별적 신용확대는 자금흐름을 왜곡하고 생산적인 부문으로의 자금유입을 막아 경제의 좀비화만 가속화하는 법. 관치에 짓눌려 자생력을 잃어버린 금융이 무책임한 포퓰리즘과 만날때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 밑바닥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킨다.
2016.04.07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임종룡의 거친개혁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핑안(平安)은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대표 금융그룹이다. 1988년 직원 13명으로 시작, 28년만에 직원 21만명 자산규모 820조원의 글로벌 100대 기업으로 도약했다. 비약적인 성장의 배경엔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핑안의 인사와 보상체계는 웬만한 글로벌 기업보다 유연하다. 직원 보수중 기본급 비중은 단 30%,나머지 70%는 실적과 연동된 성과급이다. 직급과 직무간 인력운용도 원활하다. 임원을 하다 실적이 부진하면 부장으로 내려가고 성과를 내면 다시 임원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실적에 연동된 보상과 인사, 바로 성과주의 문화의 전형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착한 개혁’을 넘어 ‘거친 개혁’을 향해 질주한다. 은행권 성과연봉제 도입을 금융개혁 2라운드의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금융권을 압박하고 있다. 핑안그룹 처럼 실적에 따른 보상과 인사를 통해 무기력에 빠진 은행 조직에 활기를 불어 넣어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포석, 비장감이 감돈다. “전체 인력의 30%는 프리라이더(free rider·무임승차자)들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금융공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토로한다. 조직을 맡아 내부를 들여다보니 성과와 무관하게 책정되는 직원의 급여체계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전체 급여의 90%이상이 기본급. 대기발령 직원의 월급도 일반 직원과 큰 차이 없을 정도니 조직엔 보신주의, 무사안일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국내 은행의 조직문화는 참 경직적이다. 적당히 일해도 월급봉투는 두둑하고 일정 직급까지 오르는데 문제 없다. 연공서열에 따라 전체 급여의 평균 88%는 호봉에 따른 정액급여. 그 결과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아프리카 후진국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직원 1인당 연봉은 8800만원에 달한다. 생산성이 비슷한 500인 이상 대기업 직원(5996만원)의 1.5배다.(2014년말, 공공알리오) 성과와 보상의 완벽한 미스매치다. 그렇다고 방만한 조직에 메스를 들이대는 건 녹록지 않다. 노조 동의 없이 단체협약을 뜯어고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기관장들은 한낱 지나가는 나그네. 단명(短命)의 CEO에게 협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력한 지배주주가 없어 정부가 주인행세를 하는 은행이나 금융공기업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고질적 관행이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적폐는 정치권과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금융권의 주요 포스트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력과 퇴직 후 노후보장용으로 생각하는 경제관료. 정치금융, 관치금융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들을 등에 업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기관장과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 노조. 공존공생, 야합의 앙상블이다. 임종룡의 거친개혁은 그래서 노조와의 일전(一戰)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금융과 관치금융의 얼룩진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과단성을 필요로 한다. 금융기관 CEO에겐 노조에 대한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카드를, 정치권과 금융당국엔 오랜기간 은행의 자생력을 떨어뜨려왔던 각종 반칙과 변칙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동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은행권 성과연봉제 도입은 결국 정치금융, 관치금융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과 맥을 같이 한다. 성과주의 도입의 관건은 객관적인 평가체계를 확립하는 일. 노조 반발을 무마하고 설득과 독려를 통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선 정치권과 정부부터 변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반칙과 변칙이 난무한 금융 현실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성과주의 문화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2016.03.03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좀비기업과의 전쟁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 유도해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는 법이다. 그 기반이 되는 경제체제가 오작동하면 흐름은 달라진다. 자원은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쏠리고 경제 전반의 후생은 뚝 떨어지게 된다.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zombie company)이 퇴출되지 않고 오히려 양산되는 건 이 같은 경제 생태계가 왜곡됐다는 점을 투영한다.1997년 외환위기 직전의 잿빛 영상들이 나사풀린 영사기의 필름처럼 휙휙 지나간다. 미국 금리인상→ 엔화약세에 따른 수출 둔화→ 기업 수익성 악화 → 기업 부실 급증→ 야당과 노조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개혁법안 →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 , 여기에 자본유출과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공교롭게도 2016년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은 그때 그 시절을 재연하고 있다.물론 외환위기때처럼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국가부도 사태로까지 떨어진다는 일각의 전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지금 실물경기의 흐름은 외환위기 직전과 비견될 정도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기업생태계는 이미 빈사상태.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유화 등 주력 업종은 초대형 부실의 늪에 빠져있고 신용지원이 없으면 파산하게 될 한계기업은 1990년대말 일본 수준(전체 기업의 14%)을 넘어서는 등 임계치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곧 그동안 당국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집착한채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부실기업 정리,산업재편을 도외시했다는 점을 반영한다. 이익집단에 포획된 정치권의 외압, 그에 따른 정책자금의 비효율적 배분, 보신주의에 빠진 채권금융기관들의 부실한 관리가 한 몫한 거다.정치금융과 관치금융에 짓눌려 자생력을 잃어버린 한국 금융의 우울한 단면이기도 하다.이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급격한 회복세는 오히려 독이 된 건 아닌지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성장세(2009년 0.7%→2010년 6.5%)가 경제 전반에 착시현상을 일으켜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점을 경기순환기의 일시적 후퇴로 오판하고 단기 대응책에 급급하다 기회를 잃어버린 1990년대 일본을 답습한 꼴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저서 ‘애프터쇼크(After shock)’에서 “눈 앞의 위기 극복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근본 원인을 방치하면 경제의 왜곡은 심화되고 위기는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지금 금융당국도 채권은행도 모두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4월 총선, 이듬해 대선 등 민감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권 차원에서 내심 사회적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을 반길리 없다. 일단 부실기업 옥석가리기를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공언은 하지만 이미 정치권의 유무형의 압력에 이를 관철할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어쩌면 더욱 혹독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지만 ‘축복된 재앙’으로도 불린다. 비록 미완(未完)에 그쳤지만 위기를 동력 삼아 구조조정을 밀어 붙여 경제가 일정부분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좀비기업과의 전쟁, 결국 위기를 지렛대로 금융당국을 넘어 정권 차원에서 명운을 걸 일이다. 구조조정은 기득권과 부담을 재편하는 과정. 치밀한 전략과 강력한 실천력을 넘어 정치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과감한 수술 없이 산소호흡기를 대는데 그치는 지금과 같은 우유부단한 부실기업 정리 방식으로는 경제회복도 경제생태계의 복원도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2016.01.25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면피성 가계부채대책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모든 정책은 선의(善意)로 포장된다. 각종 복잡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수단이 동원된다. 때로는 면피 차원의 미봉책도 등장한다. 하지만 부정확한 진단에 따른 오도된 처방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상황을 악화시키는 법.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대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양산되고 적폐는 깊어지는 모습, 바로 정책실패의 악순환이다. 정부가 또다시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의 심사기준(담보→소득)과 상환방식(거치식 일시상환 →비거치식 분할상환)의 전환을 통해 전체 가계대출 규모를 줄여나가는 방안이다. 전체 1200조원, 국내총생산(GDP)의 84%로 신흥국 최고수준에 달하는 부채덩어리에 메스를 들이댔지만 이번에도 정책의 실효성을 예단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것 같다.언뜻 보아도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 신규대출은 물론 위험수위에 있는 집단대출 등 각종 예외조항이 적지 않고 부동산 시장이 상대적으로 과열된 지방의 경우 총선뒤인 5월에나 적용된다. 폭증하는 가계부채를 통제하고 부동산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상충적인 정책 목표, 여기에 정치공학적 변수까지 더해지니 각종 정책 처방전이 누더기로 변질됐다. 근원적인 문제는 접근방식이다. 가계부채는 총량도 문제지만 저소득자· 저신용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채무자) 등 일부 취약계층의 미시적 리스크가 더욱 심각하다. 지금과 같은 금리상승기에 총량 규제에 집착할 경우 금융의 사각지대만 깊어지며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사실 빚을 통한 경기부양은 양날의 칼이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만 비용은 분산되며 미래에 교묘히 전가된다. 경기흐름만 잘 타면 단기간내에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이어지며 선순환의 흐름으로 연결되니 정부· 은행· 가계 모두 삼위일체 윈윈 게임이다. 반면 경기흐름에 역행하면 자산가격 하락으로 버블붕괴에 직면할 수 있으니 그 대가는 혹독하고 처참하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누적된 정책실패의 종합판이다. 자산효과와 버블붕괴라는 양 극단, 그 사이에서 진행된 위험한 줄타기의 산물이다. 내수진작을 위해 빚을 권장하다가도 일단 임계점에 도달해 논란이 불거지면 다시 이를 옥죄는 냉온탕 정책의 반복. 여기에 관치의 그늘아래 자생력을 잃어버린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되면서 한국경제의 고질병으로 전락한 거다.직접적인 해법은 경제의 성장 엔진을 살리는 일이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자연스럽게 경제의 파이가 커지면 부채 총량은 물론 부채 위험군의 리스크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선 가계부채의 뇌관을 제거할 묘책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그래서 어쩌면 이번 대책도 관료들의 생색내기용, 면피성 정책은 아닌지 모른다.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적당한 해법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단기 미봉책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어차피 대책의 부작용은 후임자의 몫이니 무슨 걱정인가. 본질적으로 정부가 모든 걸 주도해서 해결하려다보니 상황만 더욱 악화된다.가계부채는 은행이 자기책임의 원칙아래 접근해야 할 문제. 당국은 시장 전체의 리스크, 거시경제적 위험관리에 치중하면서 자생적인 질서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면 될 일이다. 오랜기간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다 비용청구서가 돌아오면 그제서야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는라 부산을 떠는 모습, 한국 금융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2015.12.22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기업구조조정의 정치학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구심점은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 하지만 이 위원장이 구조조정 지휘부를 장악하고 과단성 있게 칼날을 휘두를 수 있었던 건 정권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구조조정의 의지와 필요성을 역설하면 강력한 돌파력으로 밀어붙이는 2인3각의 파트너십, 바로 경제리더십의 전형이다. “ 지금은 위기다.” 최근 사석에서 만나는 경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 경제상황을 이렇게 규정한다. 기업부실이 위험수위에 직면해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부채의 배에 달하는 기업 부채는 이미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력산업들은 수조원대 부실로 빈사상태에 빠졌고 회생 가능성 거의 없는 한계기업(좀비기업)들은 우후죽순 양산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건 실증분석에서도 드러난다. KDI 분석에 따르면 전체 기업 자산 중 한계기업 자산 비중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6%대에서 2014년 10%대로 늘었다. 기업집단 내부는 부실의 늪에 빠져 썩아들어가는데 제때 메스를 들이대지 않아 경제체질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꼴이다.물론 정부가 구조조정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정점으로 관계 부처 차관급이 참석하는 구조조정 협의체가 가동됐고 해운·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4대 부실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기준도 마련됐다. 금융개혁의 전도사 임 위원장은 언제부턴가 기업 구조조정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공명과 울림은 없다. 비장함과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자명하다. 관료들의 보신주의 탓이 크다. 정권의 시계추가 반환점을 돈 지금, 관료들은 더 이상 논란이 될만한 일은 벌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의 발목잡기도 한 몫한다.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실은 단적인 예다. 근원적인 문제점은 경제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정권 차원에서 기업 구조조정의 파고를 헤쳐나갈 의지도 이를 관철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청와대의 태도는 미온적이고 시한부 경제부총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는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배제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은 이미 정권이 아닌 금융당국 차원의 과제로 격하(?)됐다.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난제를 특정 부처의 과제로 돌린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개혁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도 당연히 힘을 받지 못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처럼 임 위원장의 원맨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기업 구조조정은 고통과 치유의 파노라마다. 일단 메스를 들이대 수술대위에 올리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회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반면 환부를 도려낼때의 두려움에 차일피일 미루면 상처는 반드시 곪아 터져 나중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법. 당장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 ‘폭탄돌리기’ 하듯 그 부담을 미래에 전가하는 건 전형적인 정치공학일 뿐이다.경제리더십이 확고히 구축돼야 한다. 위기상황을 지렛대로 폭풍우처럼 밀어붙였던 외환위기 당시처럼, 구조조정 지휘부를 명확히 하고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힘을 실어줄 일이다. 목전의 선거 승리를 위해 이를 외면한다면 이 정부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위기는 어쩌면 위기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이 정부의 무신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5.11.24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 임종룡표 금융개혁의 한계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얼굴엔 요즘 웃음기가 사라졌다. 금융개혁의 야전사령관으로 취임한지 7개월. 불철주야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평가는 극히 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금융 보신주의 타파를 외치며 개혁의 가시적인 성과를 계속 압박하고, 경제부총리는 국내 금융의 저생산성을 지적하며 지지부진한 개혁작업을 질타한다. 급기야 새누리당은 금융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며 개혁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젠 집권 여당과 주도권 다툼까지 벌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난마처럼 얽힌 개혁의 과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시름은 점점 깊어진다. “금융규제 개혁을 절대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임종룡표(標) 금융개혁의 핵심은 역시 금융규제 타파다. 각종 업무영역 규제, 상품규제는 물론 법적 근거가 없는 구두지시나 가이드라인을 통한 그림자 규제까지 이젠 고질병이 된 규제 덩어리들을 일거에 혁파하는 작업이다. 적발·제재위주의 검사관행 개선, 컨설팅 형식으로의 전환, 금융사와의 소통을 위한 ‘핫라인’ 구축. 금융당국의 고압적인 검사관행에 대한 일대 혁신과제도 도마위에 올린다.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할 듯 하지만 불행히도 일선 현장에선 도무지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확성기에서만 울려퍼지는 공허한 외침, 개혁은 이미 미로속을 헤메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일련의 개혁작업이 금융당국, 바로 공급자적 시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석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금융규제, 현장검사 모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금융소비자들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현란한 미사여구로 치장한다고 해도 금융소비자들 눈으로 보면 ‘금융당국과 금융사,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문제’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며칠전 발표한 금융부문 경쟁력 지표를 통해 국내 금융은 또다시 희화화되고 있다. 물론 금융부문 경쟁력이 아프리카의 후진국 우간다보다 뒤쳐진다는 조사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국가별 경쟁력를 재는 척도로 삼기엔 평가항목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8개 항목중 정량 지표는 1개일 뿐 나머지 7개 지표가 자국 기업인들의 ‘주관적인’ 설문조사결과를 따른다. 곱씹어볼 대목은 여기에 있다. 금융부문의 수요자, 바로 국내 기업인들이 바라보는 금융부문이 그들의 기대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갤럽을 통해 실시한 금융신뢰지수 설문에서 금융정책의 적정성과 금융감독기관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낙제점으로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외환위기 당시 폭풍우처럼 진행된 김대중정부의 구조개혁. 이후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금융부문의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정부 초창기 창조금융…. 모두 현란한 구호를 통해 정권의 레테르에 맞는 금융혁신을 공언했다. 하지만 모두 변죽만 울린채 물거품처럼 사라진 건 금융부문의 혁신이 정치적 슬로건으로 형해화 (形骸化)될 뿐 금융소비자들 입장에선 체감할만한 정책처방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공급자의 입장이 아닌 금융 소비자의 관점에서 금융개혁을 진행할 일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며 경제성장의 토대. 경제성장과 국민편의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혁신의 불꽃을 지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토록 유도하고, 금융발전의 혜택을 소비자들이 최대한 공유할 있도록 제도적 틀을 설계하는 일. 금융개혁의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2015.10.19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금융개혁의 적들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규제관료는 관성의 트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규제권의 행사는 이들에겐 힘의 원천. 본능적으로 규제를 유지·확대·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영향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규제의 완화나 철폐는 반가울리 없다. 규제혁파의 바람이 일선 현장에까지 녹아들지 않는 건 규제집행자들의 이 같은 보이지 않는 저항 때문이다. 집단 이기주의, 심리적 이반, 바로 규제개혁의 함정이다.“모든 검사과정에서 확인서와 문답서 징구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겠다” 지난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공언했다. NH농협금융 회장 시절, 현장에서 느낀 뼈저린 경험 때문인지 낡은 금융관행의 상징과도 같던 확인서 작성의 폐혜를 규제개혁의 첫 작품으로 제시했다. 사실 금융감독원 검사역들이 검사현장에서 강요하는 ‘확인서’는 금융사 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검사역들이 위법이나 부당행위에 대한 혐의를 잡았을때 해당 금융사 직원들이 사실관계를 문서로 작성해야 하는 일종의 자술서와 같다. 관련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하고 날인도 해야 하니 추후 금감원 제재심의 과정에선 증거자료가 될 수도 있는 법. 혐의가 있다면 검사역 스스로 물증을 확보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번거롭기 때문에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사 직원을 범죄 피의자처럼 다루는 전형적인 퇴행적 검사관행이다.6개월이 흐른 지금. 검사현장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최근 만난 한 금융사 대표의 토로. “확인서는 없어졌는데 대신 의견서를 달라고 한다. 확인서가 의견서로 둔갑했을 뿐이다.” ‘의견서’는 검사과정에서 검사반장 명의로 교부된다. 작성주체는 다르지만 금융사 부서장들의 사인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향후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는 확인서와 다를 바 없다. 금융사 임직원의 권리보호기준까지 제정됐지만 처벌위주의 접근, 금융사 직원을 잠재적 범법자로 다루는 현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임종룡표(標) 금융개혁의 하이라이트는 규제혁파다. 수십년간 적폐로 쌓여 이젠 고질병이 된 규제 덩어리들에 대해 ‘절절포’(절대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를 외치며 메스를 들이댄다. 잔잔한 변화의 물결.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검사현장에서 확인서가 의견서로 슬며시 대체됐듯 편의주의적 검사관행은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금융개혁에 대한 일부 긍정적인 평가에도 현장의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규제관료들에게 규제권의 행사는 생존의 법칙이다. 이익은 자신들에게 돌아오지만 불필요한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금융사들에 전가될 뿐이다. 규제집행자들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외부효과(externalities)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철폐할 유인은 크지 않다. 이들에겐 오히려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이득이다. 재량권 행사에 따르는 리스크를 굳이 부담할 필요가 없다. 개혁의 시계추도 자신들의 편이니 좀 더 버티면 된다. 정권의 임기는 절반 가까이 남았지만 현실적으로 개혁의 골든타임은 데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다. 모든 개혁이 마찬가지겠지만 금융개혁의 화살도 외부보다는 내부부터 정조준해야 한다. 대부분의 규제개혁은 저항하기 어려운 압력이 가해질때 이뤄지는 법. 개혁의 대상이 될 내부 규제집행자들이 칼날을 휘두르고 있으니 폭풍처럼 휘몰아쳐야 할 개혁의 바람이 미풍에 그치고 있는 게 아닌가.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절절포의 절절한 울림. 금융사들엔 아직까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2015.09.15 I 송길호 기자
실력 없으면 도태,저축은행들.."뭉쳐야 산다"
  • [화통토크]실력 없으면 도태,저축은행들.."뭉쳐야 산다"
  • ▲최규연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은 최근 서울 광화문 도렴빌딩 저축은행중앙회 사무실에서 열린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저축은행 업계가 함께 노력해 공동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정욱 기자]부실의 대명사로 불리던 저축은행 업계가 올들어 7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란 혹독한 시련을 겪은 지 4년 만이다. 저축은행 업계 전체의 자산규모도 올 상반기 현재 40조2000억원으로 1년전 같은 기간에 비해 10%가까이 늘었다. 저축은행업계가 바닥을 치고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그 중심에는 최규연 상호저축은행연합회 회장이 있다. 다들 저축은행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지난 2012년, 상호저축은행중앙회의 수장을 맡아 그동안 업계가 정상궤도에 오르는데 한 몫 했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 서울 광화문 도렴빌딩 상호저축은행중앙회 사무실에서 최규연 회장과 만났다. 최 회장은 지난 3년을 회상하며 “이제는 저축은행 업계의 현안은 단순히 평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각자 도생이 어려운 현실에서 모두 다 함께 노력해 저축은행 업계 공동의 경쟁력을 기르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중앙회 회장으로 취임 후 3년이 지났습니다.“지난 3년간 처음 욕심만큼 강력한 중앙회 조직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각 저축은행들의 이해관계와 경영전략이 모두 다르다보니 업계 내부 조정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예를들면, 전체 저축은행에서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는 곳은 극소수지만 국민들의 인식에는 여전히 저축은행 하면 고금리를 떠올립니다. 사실 저축은행들은 합법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데 여기에 윤리적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저축은행의 평판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지금 업계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현안은.“취임 초기에는 신뢰가 크게 무너져 부정적인 평판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평판의 문제는 아닙니다. 실질적인 콘텐츠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축은행들의 가장 큰 현안은 취약한 영업력입니다. 한마디로 실력을 길려야 한다. 저축은행들은 시중은행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들을 접하기 때문에 고객 평가능력이 은행보다 더 좋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짧은 시간에 신용 평가 능력을 기른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영업력과 신용평가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저축은행 본연의 역할인 서민금융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겠지요. 지원만 해주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그런 계층을 도와주는 일, 바로 저축은행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출현 등 금융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시장상황이 녹록지 않는데...특히 은행들이 이젠 중금리 대출 등을 통해 전통적인 저축은행 업계의 영역까지 잠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자금 공급이 초과상태일때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금융기관은 바로 퇴출된다고 보면 됩니다. 시장에는 이젠 항상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퇴출되기도 합니다. 업역 간에 칸막이를 쳐놓고 넘어오지 못하게 경쟁을 막는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때문에 저축은행업계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은행들이 다른 저축은행이 아니라 시장 환경 그 자체의 변화입니다. 저축은행들이 영업력과 리스크 분석 능력을 스스로 길려야 한다는 건 이 때문입니다.▶은행과의 경쟁속에서도 저축은행들만의 특화된 서비스가 있을 텐데요.“시중은행은 대규모 조직입니다. 경영이 디테일 할 수 없습니다. 자연히 고객에 대한 리스크 평가도 시스템에 따라 획일화될 수밖에 없지요. 상대적으로 조직이 작은 저축은행은 경영상 신속한 판단이 가능합니다. 일선 창구에서도 재량적인 판단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저축은행들은 시중은행들과 달리 오너십이 확실해 경영의 지속성이 있습니다. 이 같은 장점들을 잘 살려나간다면 저축은행들로서도 활로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앙회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취임 초부터 중앙회부터 역량과 기능을 키우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업계의 취약점을 중앙회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했지요. 중앙회 직원들이 저축은행 현장에 파견근무를 한 것도 중앙회와 저축은행 업계간 소통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업계의 공통된 이익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79개의 저축은행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상충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저축은행들은 각자의 지역 기반을 통해 이미 자신들만의 경영방식이 확고했습니다. 관계형 금융에 대한 모든 기법들은 다 나와 있지만, 이를 하나의 잣대로 묶는 방법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면. “거창하게 금융산업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건 무리겠지만, 이미 국내 금융산업은 레드오션으로 변했습니다. 국내 자금은 항상 공급초과상태이니 만큼 결국 해법은 밖으로 퍼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초과 자금을 해외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거지요.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들의 해외진출이 필요한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초기에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해외 투자 경험과 역량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실패를 딪고 성공해야 합니다. 초기 실패가 두려워 국내에 안주하면 비전이 없습니다. 금융사들의 해외진출이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대담 = 송길호 금융부장정리 = 성선화 기자 사진 = 김정욱 기자
2015.09.07 I 성선화 기자
  • [데스크칼럼]재벌의 진화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규제의 목적은 피규제자의 의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사회적 기준에 부합되는 책임있는 행동을 유도할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기때 도입되는 규제는 과잉인 경우가 많다. 문제가 발생하면 또 다른 규제를 만들고 실패하면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해내는 악순환의 고리, 바로 규제의 블랙홀이다. ‘롯데사태’는 재벌체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극소수 지분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해 그룹 전체를 통제하는 총수의 전횡,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의한 후진적 승계방식과 경영권 분쟁,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비방과 퇴행적 행태…. 황제경영의 전근대성· 재벌체제 부조리의 집대성이다. 3주간에 걸쳐 진행된 롯데시네마의 저질드라마, 공분을 일으키며 재벌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한다.1960년대말 스웨덴 스톡홀롬.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발렌베리 본사 앞은 연일 시위대의 물결로 넘쳐났다. 기득세력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내건 급진 학생운동(68혁명)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발렌베리 가문도 집중공격을 받은 거다. 지금이야 바람직한 재벌의 모델로 평가받지만 당시만 해도 발렌베리 가문은 정경유착· 경제력 집중· 세습경영, 이른바 시대 착오적인 기득권 세력의 상징으로 내몰렸던 셈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대응은 정공법이었다. 스웨덴식 대타협, 경영권 세습을 인정받은 대신 기업 소유권을 사회에 돌려주며 책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계열사의 정점에 있는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공헌을 이어갔고 사치를 자제하며 국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가문의 원칙은 이때 확립됐다. 발렌베리의 진화는 결국 스스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결과다. 권위주의 시대 재벌 통제는 산업정책과 정책금융, 2가지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 정부가 직접 산업정책을 설계하고 부족한 자본을 배분하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선 정치권력의 재량적 통제가 가능했다. 반면 민주화된 체제에선 원칙적으로 법과 제도에 기반을 둔다. 회계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제 도입· 소액주주권 강화 등 총수 전횡을 감시하는 메카니즘은 모두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각종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도입된 재벌 규제장치다. 불행한 건 명시적 규제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피규제자들은 언제나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며 우회로를 찾는다. 가공자본을 통해 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를 가져오는 기형적 지배구조, 순환출자고리의 정점에 있는 불투명한 비상장사, 총수의 자의적 권한을 뒷받침하는 거수기 이사회, 탈법적인 경영승계…. 각종 규제장치의 도입에도 일부 재벌들은 통제의 법망을 벗어나는 각종 반칙과 변칙을 통해 여전히 전횡을 일삼는다.그렇다고 무분별한 규제 강화만이 해법은 아닐 터이다. 안정적인 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순환출자 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까지 끊는다면 계열사의 주력 기업은 경영권 위협은 물론 외국자본에 교란당할 수 있다. 규제의 본질은 끊임없는 자기증식이라고 할때 규제의 실패를 더욱 강력한 규제로 밀어붙이는 건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법과 제도적 장치만으로 재벌의 일신을 기대할 수 없다면 답은 자명하다. 위기를 기회로 돌파한 발렌베리 가문의 예처럼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지렛대로 재벌들이 자발적인 해법을 제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소유권은 특권이 아닌 책임’. 발렌베리 가문에 도도히 흐르는 자기성찰의 원칙처럼 재벌 스스로 진화할 일이다. 지금과 같은 정치 사회적 요구에도 기존 관성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2의 롯데사태’는 양태만 달리 할뿐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2015.08.18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재벌의 진화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규제의 목적은 피규제자의 의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사회적 기준에 부합되는 책임있는 행동을 유도할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기때 도입되는 규제는 과잉인 경우가 많다. 문제가 발생하면 또 다른 규제를 만들고 실패하면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해내는 악순환의 고리, 바로 규제의 블랙홀이다. ‘롯데사태’는 재벌체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극소수 지분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해 그룹 전체를 통제하는 총수의 전횡,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의한 후진적 승계방식과 경영권 분쟁,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비방과 퇴행적 행태…. 황제경영의 전근대성· 재벌체제 부조리의 집대성이다. 3주간에 걸쳐 진행된 롯데시네마의 저질드라마, 공분을 일으키며 재벌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한다.1960년대말 스웨덴 스톡홀롬.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발렌베리 본사 앞은 연일 시위대의 물결로 넘쳐났다. 기득세력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내건 급진 학생운동(68혁명)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발렌베리 가문도 집중공격을 받은 거다. 지금이야 바람직한 재벌의 모델로 평가받지만 당시만 해도 발렌베리 가문은 정경유착· 경제력 집중· 세습경영, 이른바 시대 착오적인 기득권 세력의 상징으로 내몰렸던 셈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대응은 정공법이었다. 스웨덴식 대타협, 경영권 세습을 인정받은 대신 기업 소유권을 사회에 돌려주며 책임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계열사의 정점에 있는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공헌을 이어갔고 사치를 자제하며 국민 속으로 파고들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가문의 원칙은 이때 확립됐다. 발렌베리의 진화는 결국 스스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결과다. 권위주의 시대 재벌 통제는 산업정책과 정책금융, 2가지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 정부가 직접 산업정책을 설계하고 부족한 자본을 배분하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에선 정치권력의 재량적 통제가 가능했다. 반면 민주화된 체제에선 원칙적으로 법과 제도에 기반을 둔다. 회계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제 도입· 소액주주권 강화 등 총수 전횡을 감시하는 메카니즘은 모두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각종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도입된 재벌 규제장치다. 불행한 건 명시적 규제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피규제자들은 언제나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며 우회로를 찾는다. 가공자본을 통해 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를 가져오는 기형적 지배구조, 순환출자고리의 정점에 있는 불투명한 비상장사, 총수의 자의적 권한을 뒷받침하는 거수기 이사회, 탈법적인 경영승계…. 각종 규제장치의 도입에도 일부 재벌들은 통제의 법망을 벗어나는 각종 반칙과 변칙을 통해 여전히 전횡을 일삼는다.그렇다고 무분별한 규제 강화만이 해법은 아닐 터이다. 안정적인 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순환출자 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까지 끊는다면 계열사의 주력 기업은 경영권 위협은 물론 외국자본에 교란당할 수 있다. 규제의 본질은 끊임없는 자기증식이라고 할때 규제의 실패를 더욱 강력한 규제로 밀어붙이는 건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법과 제도적 장치만으로 재벌의 일신을 기대할 수 없다면 답은 자명하다. 위기를 기회로 돌파한 발렌베리 가문의 예처럼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지렛대로 재벌들이 자발적인 해법을 제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소유권은 특권이 아닌 책임’. 발렌베리 가문에 도도히 흐르는 자기성찰의 원칙처럼 재벌 스스로 진화할 일이다. 지금과 같은 정치 사회적 요구에도 기존 관성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제2의 롯데사태’는 양태만 달리 할뿐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2015.08.18 I 송길호 기자
  • [데스크칼럼]빗나간 경기부양
  •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경기부양은 정책의 앙상블이다. 재정과 통화, 거시정책들의 정교한 조합으로 이뤄진다.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그러나 정책의 전달체계를 정비해야 하는 법. 경제의 혈맥 금융시스템이 오작동하면 확장적 재정정책도, 완화적인 통화정책도, 탄력적인 환율정책도, 그 어떤 부양책도 통(通)할 수 없다. 정부가 올해도 경기부양 패키지를 선보였다. 46조원+α의 규모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추경, 정책금융…. 단골메뉴들이 예외없이 등장했다. 한국은행도 역대 최저치의 저금리기조를 유지하며 화답한다.재정과 통화를 아우르는 정책조합, 예년처럼 경기부양의 필요조건은 마련됐다. 하지만 지도에도 없는 길로 포장된 1년전의 부양책처럼 정책효과는 미지수다. 부양책의 약발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정책이 구현되기까지의 적지 않은 시차,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의 발생,정치권의 무능과 비협조. 한결같이 정책당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들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의 전달체계에 있다. 통화정책의 파이프라인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부양책의 효과가 잠식되고 있다. 1990년대초 일본이 그랬다.자산버블이 붕괴되고 금융시장이 디플레이션에 빠진 상태에서 일본 정책당국은 대대적인 부양책을 펼쳤다.제로 금리상태를 유지하며 금융부문에 유동성을 투입하고 재정지출을 통해 자금을 공급했다. 하지만 경색된 금융시장에 찔끔찔끔 풀린 돈은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가계와 기업의 금고로 흘러들어가 경기진작의 마중물이 될 수 없었다. 신용경색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단기 부양책만 골몰한 결과, 실탄만 낭비한 채 20년 장기불황의 터널에 빠지게 된 거다. 국내 금융시장도 일본 금융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돈맥경화에 걸린 듯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이미 유동성의 함정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실제 확장적 재정지출,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지만 통화유통속도(회전율)가 떨어지며 통화승수(본원통화 한 단위가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은행의 자금중개기능· 신용창조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건 은행권의 보신주의 탓도 있다.위험회피성향이 높아진 은행들은 중소기업대출보다는 대기업대출, 신용대출보다는 주택담보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에 대한 신용보강이 적절히 이뤄질리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제도적 제약이다. 지난 2009년 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위해 금융당국이 예대율(대출액에 대한 예금액의 비율)을 100%이내로 제한한 이후 은행들의 대출여력은 크게 약화됐다. 은행들이 돈을 풀 수 있는 연결망을 타이트하게 봉쇄한 채 신용경색에 빠진 금융시장에 돈만 살포하니 정책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신용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의 부양책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마치 모르핀를 맞아 연명하는 환자와도 같다. 모르핀을 계속 투여하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지 모르듯 펀더멘탈이 약해진 나라경제는 부양책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는 법이다.결국 금융시스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확장적인 거시정책과 금융개혁을 연결할 일이다. 여신규제를 탄력적으로 완화하고 금융기관의 리스크 회피 현상을 줄이는 유인체계를 통해 신용경색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스템에 돈이 제대로 돌도록 유도하고 실물경제를 튼튼히 뒷받침하도록 금융부문을 재설계하는 일, 금융개혁의 화살은 이 같은 신뢰의 제고를 정조준해야 한다.
2015.07.16 I 송길호 기자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합의 이끌어 '소비자 부담' 줄여줄 것"
  • [화통토크]"카드가맹점 수수료율 합의 이끌어 '소비자 부담' 줄여줄 것"
  • △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은 9일 여신협회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올 연말로 예정된 카드가맹점 수수료율을 합리적으로 산정해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한대욱 기자)[대담=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정리=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카드산업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도 없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 않다.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버블 붕괴 이후 양산된 신용불량자, 여기에 지난해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 등은 카드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를 투영한다. 카드가맹점 사업자 사이에선 카드사가 챙기는 수수료가 높다는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김근수(사진) 여신금융협회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업계의 이런 고민들을 먼저 꺼냈다. 그는 우선 지난해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에 대해 “업계를 대표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정보유출 사고를 계기로 올해부터 단말기 전환 사업이 추진된다”며 “앞으로는 보안체계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도 강조했다. 올해 말 예정된 적격비용(카드사 수수료율의 기준이 되는 비용)산정에 대해선 “그동안 몇 차례 기준금리 인하로 조달비용이 낮아진 만큼 이런 부분이 반영될 것”이라며 “남은 기간 수수료를 잘 조정해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소는 잃었지만 카드사 보안 강화 계기”1998년 세워진 여신협회는 카드사, 리스·할부금융사, 신기술금융사 등을 회원사로 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13년 6월 제 10대 회장으로 취임해 임기 1년을 남겨둔 상황이다. 지난해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김 회장으로서도 뼈 아픈 일이다. 카드사의 수익감소는 차치하고 카드회사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치명타를 입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 사고를 계기로 신용카드 발급 때 지나치게 개인정보를 많이 요구하던 관행이 바뀌었고 본인이 제공한 개인신용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됐다”며 “분명히 ‘소’는 잃었지만 카드사들의 허술한 고객정보 관리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여신협회가 보안강화를 위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기존 마그네틱(MS) 단말기를 보안성이 우수한 IC단말기로 바꾸는 일이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영세가맹점의 단말기 전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이번에 조성된 기금은 65만 영세가맹점의 단말기를 바꾸는데 사용된다. 김 회장은 “단말기 전환 사업이 마무리되면 기존의 카드복제 사고는 사라질 것”이라며 “이런 노력들이 더해지면 카드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 잘 조정할 것”올해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가맹점 수수료율 산정과 관련해선 “가맹점 수수료의 기준이 되는 ‘적격비용’을 산정하기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했다”며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적격비용을 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적격비용이란 카드 결제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카드 가맹점이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비용으로 마케팅비용, 자금조달 비용 등이 포함된다. 카드사들은 여기에 일정 마진을 붙여 최종 수수료율을 정한다. 김 회장은 “가맹점 수수료를 정할 때 자금조달비용이 상당히 많이 차지하는데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로 조달금리가 내려간 만큼 이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수수료 인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는 “마지막 임무는 남은 6개월 동안 카드사 수수료를 잘 조정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단 얘길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시장규율의 심판자로서 금융질서와 소비자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룰만 적용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예컨대 카드론을 이용하는 고객 대부분은 신용상태가 취약한데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무조건 금리를 내리라고 요구하는 건 시장 원리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 “금융산업 격변…5~10년후 준비해야”김 회장은 카드산업의 미래와 관련해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카드산업은 5~10년 안에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흐름을 타고 금융산업이 격변기를 맞으면서 카드를 대신할 새로운 결제수단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10여 년 전 동네 곳곳에 있었던 비디오가게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한때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비디오는 물론 DVD를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며 “핀테크 활성화로 금융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5~10년을 내다보고 준비를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핀테크 시대가 열리면서 그만큼 기회도 많아졌다고 했다. 김 회장은 “카드사들의 10년 숙원 사업이었던 부수업무 규제가 풀리면서 카드사들의 사업영역이 상당히 넓어졌다”며 “당국도 규제 완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한 단계 도약할 여건은 마련됐다”고 말했다. ■김근수 여신협회장은 누구1958년 서울 출생. 경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한뒤 재무부 금융국·증권국 등을 두루 거친 금융통이다.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을 거쳐 2010년부터 3년간 여수엑스포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신용카드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후원개발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고 있다.
2015.06.30 I 김동욱 기자
1 2 3 4 5 6 7 8 9 10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