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배후를 추적 중인 ‘마약 음료’ 사건이 부유층이 밀집한 서울 강남, 그 가운데에서도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대치동 일대에서 벌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ADHD 약물 처방까지 받는 대치동 일대 수험생들의 ‘학구열’을 이용해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란 분석이 있다. 또한 이 일대에 그간 신생·유명 학원이나 건강기능식품 홍보를 위한 판촉물이 많다는 특성도 활용해 대담하게 저지른 범행으로 해석되고 있다.
|
10일 경찰에 따르면 일당이 범행 미끼로 쓴 필로폰 성분이 든 마약 음료병에는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ADHD’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당은 “기억력과 집중력에 좋은 새 음료를 개발해 시음회 중”이라고 학생들을 속였다.
이번 사건은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한 신종 범죄 유형이지만, 교육열이 높은 강남 지역의 특성에 따라 암암리에 ‘공부 잘하는 약’으로 ADHD 약물을 처방 받은 이들이 있단 점도 연관성이 있다. ‘총명탕’ 등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한약을 넘어 각종 약물 사용이 낯설지 않은 분위기도 한몫한 셈이다.
학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학구열이 높은 대치동의 이러한 문화를 범죄에 악용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세부터 ADHD 진단을 받고 투약해왔다는 대학생 조모(21)씨는 “20만원 정도 내고 정식 검사를 받아 약을 처방받았는데, 주변에서 ‘진짜 집중이 잘 되느냐’고 물어보고, ‘먹어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학업에 대한 부담이 약물 복용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생 2학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노모(49)씨는 “안 그래도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학생들, 자녀를 위해서는 뭐든지 해주고 싶은 심리를 악용한 것 같다”고 했다.
강남 3구 ADHD 처방 상위권…오·남용 금물
특히 지역을 서울로 한정하면 5년간 송파구가 6403명으로 서울 자치구 중 처방 인원이 가장 많았다. 이어 △강남구 6324명 △노원구 4661명 △서초구 4345명 등으로 교육열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되는 ‘강남 3구’는 모두 상위권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ADHD 약물 사용자가 늘고 있지만, 오·남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일반인은 오히려 주의 산만 등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ADHD 치료제의 주성분은 ‘메닐페니데이트’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해당 성분은 ADHD로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는 전두엽을 자극해 주의·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ADHD 증상이 없는 이들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편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현재까지 음료를 제조·공급한 20대 길모씨와 길씨에게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을 건넨 판매범, ‘고액 알바인 줄 알았다’며 음료를 나눠준 일당 등 총 6명을 붙잡았다. 또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관성을 파악, 배후를 추적 중이다. 서울시와 경찰청 등은 유사한 범죄 예방을 위해 학교와 학원가 등을 중심으로 폐쇄회로(CC)TV 6만1000여대를 설치해 실시간 감시에 나선다. 이날 대검찰청 등은 마약 범죄 유관기관 협의회를 열어 ‘마약 범죄 특별수사본부’ 설치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