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1만원도 안 되는데 반찬이 다섯가지나 나오고, 바깥 식당에선 공기밥 추가만 해도 돈이 드는데 여기선 눈치를 안 봐도 되니 좋아요.”
고물가로 평균 점심값 ‘1만원 시대’, 직장인들이 구내식당으로 몰리고 있다. 밥값을 아끼면서 양껏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고물가 시대 구내식당이야말로 ‘최고의 사내복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 강남구 삼성역 오크우드타워 지하1층의 구내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진=김영은 수습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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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과 27일 점심시간 이데일리가 찾은 삼성역 오크우드타워 지하 1층의 구내식당. 6500원이면 밥과 국, 4~5가지의 반찬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입주사 직원이 아닌 외부인이 이용할 수 있는 200여개의 좌석은 만석이었다. 직장인 이정숙(56)씨는 “바깥에서 먹으려면 밥만 추가해도 돈이 드는데 여기선 그런 게 없고 메인 반찬을 제외하면 반찬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구내식당의 장점을 소개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영양사들도 지난해부터 부쩍 손님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고 했다. 영양사 김모(27)씨는 “낮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가 ‘피크 타임’이고, 입주사뿐만이 아니라 삼성역 인근 직장인들은 다 몰리는 것 같다”며 “점심 기준으로 1300여명 분량의 배식이 이뤄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영양사 A씨도 “지난해 5500원이었던 단가를 올리고, 자율배식을 시행했는데도 사람이 많이 몰린다”며 “인기 있는 메인 반찬은 제한을 둬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흔히 ‘짬밥’이라 불리며 외면받기도 했던 구내식당 밥. 최근 각광받는 건 서울 점심 한 끼가 평균 1만원을 넘을 정도로 물가가 치솟은 영향이다. 푸드테크 업체 ‘식신’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직장인 식대 평균 결제 금액은 9633원으로, 전년 동기(8302원) 대비 16% 올랐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만2285원으로 전년 대비 33.8%나 올라 인상 폭이 제일 커, 만원짜리 한 장으로는 점심먹기조차 힘들어졌다.
하지만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에서도 주요 구내식당이나 한식뷔페 등에선 아직 한 끼 만원 이내에 식사 해결이 가능하다. 매주 식단표는 인터넷 사이트 ‘밥풀닷컴’에 공개돼 메뉴 선택에 들이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강남역 역삼세무서(5500원), 역삼역 포스코타워(6000원), 양재역 캠코타워(7000원) 등은 강남 일대에서 접근성이 좋고, 가격 역시 저렴해 ‘점심 성지’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들이다.
구내식당을 찾는 이들은 모두 ‘한 끼라도 저렴하게 먹고 싶다’며 방문 이유로 들었다. 40대 직장인 심모씨는 “물가 부담에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일주일에 2~3번은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코엑스 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차모(32)씨는 “일주일 내내 온다, 직원 할인을 적용하면 회사에서 한 끼 3500원을 지원해줘서 3000원이면 한 끼 해결이 된다”며 “입주사는 물론이고 외부인, 박람회 등을 찾아온 시민들까지도 오면서 요즘은 ‘인산인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내 구내식당이 없는 경우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서거나, 전동 킥보드 등을 타고 이동해 ‘원정’에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이모(28)씨는 “사무실이 선릉역이라서 부지런하면 역삼역이나 강남역 정도까지는 이동이 가능하다”며 “조금 빨리 걷거나 전동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면 운동도 되는 기분이고 돈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20분여 걸어 한 구내식당을 찾은 직장인 B(29)씨 역시 “발품을 팔아 점심값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지금같은 불경기엔 구내식당을 둔 회사들이 ‘최고의 복지’를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