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한글날 떠올리는 헐버트 선생과 주시경 선생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 등록 2024-10-08 오전 5:00:00

    수정 2024-10-08 오전 5:00:00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올해는 한글(훈민정음) 반포 578돌이 되는 해다. 전 세계에서 문자를 기념하는 날은 ‘한글날’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는 한글날 전후 일주일간 한글 주간 행사를 열고 전국에서 한글과 한국어 관련 문화행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글이 이렇게 존중받는 것을 보니 어문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하고 감개무량할 뿐이다. 올해 한글날 행사 주제는 ‘괜찮아 한글’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글 6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괜찮아”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미안해”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이 글자는 조선조 500년 동안 한자와 한문에 눌려 비주류 문자로서 소수에 의해 명맥이 유지됐다. 한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사람 중 한 명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 1886년 영어 교사로 온 호머 헐버트(1863~1949) 선생이다.

헐버트 선생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한국어를 적는 글자가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언문을 나흘 만에 깨쳤다고 한다. 그로부터 사흘 뒤 한국 사람들이 어려운 한문만 숭상하고 자신들의 효율적인 글자인 언문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3년 뒤인 1889년 그는 ‘뉴욕트리뷴’(지금의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며 세계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89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출판해 한글로만 쓸 수 있음을 직접 보였다. 책의 제목을 내용과는 관계없이 ‘사민필지’로 한 것도 한글로 쓰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헐버트 선생은 한글의 가치를 거의 잊혀 가던 시기에 일깨워준 큰 공적이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한글과 한국어가 우리 민족의 얼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일상에서 쓰일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은 주시경(1876~1914) 선생이었다. 주 선생은 16세 때 한문을 배우면서 한자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한국어로 풀이하자 비로소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이 경험을 통해 문자는 말을 적으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때부터 한글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 선생은 1894년에 잠깐, 그리고 1896년 3월부터 배재학당에 다니기 시작해 그해 4월 독립신문사의 회계 겸 교보원(교정원) 일을 맡았다. 이 시기를 전후해 헐버트 선생과의 만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두 사람의 구체적인 만남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주 선생이 편집해 세상에 나온 ‘독립신문’(1896년)은 한글만으로 쓰이고 띄어쓰기까지 갖춰 100년 뒤 한국의 신문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후 애국계몽운동, 국어국문 연구, 국어국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어문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이념으로 발전했다. 특히 교육을 통해 같은 이념을 지닌 제자들을 대거 양성했는데 이 제자들은 선생의 가르침대로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말과 글이 살아 있으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다”라는 신념으로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면서 자주독립을 준비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문화 강국이 되고 경제 발전 및 정치가 민주화된 데에는 한글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우리가 한때 천대하던 한글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되살려낸 선구자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헐버트 선생은 ‘한글 선각자’라고 부를 수 있으며 주시경 선생은 최현배 선생의 표현대로 ‘한글 중흥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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