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쿠바)=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노인을 단순히 돌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제 삶을 이해할 때 우리 스스로도 ‘나이듦’에 대해 제대로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테레사 오로사 프라이즈(Teresa Orosa Fraiz) 아바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4일 쿠바 아바나의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권효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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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만난 테레사 오로사 프라이즈(Teresa Orosa Fraiz) 쿠바 아바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69)는 이렇게 말했다. 프라이즈 교수는 쿠바의 공식 은퇴 연령인 60세를 넘겼지만 노인심리학 분야에서 여전히 활발히 학술 활동과 연구를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국제연합(UN)의 ‘건강한 노화를 위한 50인의 세계 리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라이즈 교수는 “노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우리 사회가 노화에 대한 올바른 준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쿠바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20%에 달한다. 길거리의 시민 10명 중 2명은 노인인 셈이다. 이처럼 사회의 한 구성원임에도, 노인들은 소외되기 쉽다는 것이 프라이즈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적 여건과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것 외에도 교육이 필요하다”며 “실제로 노인들이 원하는 것을 인지하고 연구할 때 노인 당사자는 물론이고, 젊은이들도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이즈 교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아바나대에서 최초로 노인 대학(Universidad De La Tercera Edad) 프로그램을 창설했다. 어느덧 23년째를 맞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어간 노인은 1만9319명에 달하며, 이제는 쿠바 곳곳의 다른 대학교로도 퍼져나가고 있다. 프라이즈 교수는 이러한 활동이 노인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세대 간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을 통해 노인들이 사회 내 새로운 역할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프라이즈 교수는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고, 노인들 역시 새로운 경험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상에서 어떠한 차별을 겪는지 등 세세한 부분을 살펴보고, 이에 맞게 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준비가 돼있을 때, 젊은 세대 역시 ‘나이듦’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한 제도적 차원의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쿠바는 지난해 9월 ‘가족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가족법 개정안에는 동성혼 법제화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포함하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노인이 가족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도 명문화돼있다. 이를테면 노인들은 가족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심지어 이혼 가정의 손자·손녀들과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가족들을 돌보거나 본인 스스로를 돌보고, 후손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도 주어진다.
이처럼 노인 스스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쿠바에선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노인들은 원한다면 은퇴 이후에도 일을 할 수 있고, 사회의 ‘어른’으로서 대우받는다. 프라이즈 교수는 코로나19가 극심했을 당시, 세계 노인의 날인 지난해 10월 1일 이뤄진 행사를 소개했다. 프라이즈 교수는 “락다운으로 도시가 멈췄을 때, 집에서 돌봄을 책임지고 가족들을 돌봤던 영웅은 노인들이었다”며 “단순한 숫자나 사망률, 노령 인구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역할이 주어진 시민으로서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통·번역 도움=손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