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적 지표보다 현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의 핵심 상권인 강남, 잠실, 신촌, 시청, 을지로, 성수 등에서 영업하는 소상공인들은 극심한 적자를 호소한다. 매출이 늘어나도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수수료, 배달비 등의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영업이 잘되는 상권의 소상공인들도 경제위기나 감염병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 나머지 지역의 소상공인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이 이처럼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상적으로는 소상공인의 경쟁력이 미약해 환경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 쉽다. 물론 소상공인의 매출은 변동성이 높아 사소한 변화에도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외부 환경의 영향은 모든 나라의 소상공인에게 공통되는 위협요인이지 특별히 우리나라 소상공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금리와 물가가 인상된 여건에서도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소상공인은 장사가 잘돼 종업원을 구하지 못해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상공인이 위기 상황에 몰리는 것은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수성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시장실패와 정책실패의 두 가지가 결합해 소상공인의 ‘K형 복합위기’를 야기했다.
경제적 약자인 소상공인은 누구에게나 ‘을’의 위치에 있다. 건물주, 공급기업, 유통기업, 프랜차이즈, 체인 본부, 온라인 플랫폼 등은 우월한 협상력을 이용해 소상공인의 이익을 앗아간다. 임대료, 재료비, 입점비, 가맹비, 물류비, 배달료, 수수료, 광고비 등의 온갖 명목으로 소상공인의 이익을 빨아들인다.
공동사업의 상생협력 모델로 알려진 프랜차이즈에서도 가맹본부는 필수품목이라는 명분으로 가맹점에 수백 가지에 달하는 물품을 비싸게 공급해 초과이익을 챙긴다. 대기업은 대리점 계약을 무기로 소상공인에게 끼워팔기와 밀어내기의 횡포를 부린다. 재벌기업이 골목상권에 직접 침투해 소상공인을 고사시키며 시장을 장악하기도 한다.
소상공인은 억울함을 당해도 법적 보호를 받을 길이 별로 없다. 불평등한 계약과 기울어진 협상력에 대항해 싸우려면 장사를 때려치워야 한다. 정부는 시장실패로 인한 문제가 여론화하면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마련할 뿐 항구적 해결책은 모색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의 구조적 문제는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자영업자 수는 658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2841만6000명)의 23.2%를 차지한다. 작은 내수시장에 이처럼 많은 소상공인이 활동하고 있으니 과밀과당 경쟁에 시달려 다 같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 소상공인이 많은 이유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나 퇴직으로 직장을 잃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영업 전선에 뛰어든다. 결국 정부의 고용노동 정책의 실패가 소상공인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소상공인의 손익을 갉아먹는 주범인 비용부담도 정책실패에 기인한다.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등의 비용이 상승한 것은 정부의 부동산정책, 최저임금 인상, 물가관리 등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은 경제의 저변이면서 사회의 저수지이다. 우리 경제와 정책의 실패가 모두 소상공인에게 흘러들어가 복합위기를 만들어 낸다. 경제와 정책에 대한 전면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 한 소상공인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