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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겨울여행은 다른 계절과 사뭇 다르다. 바람은 매섭고 풍경은 황량하다. 해 또한 일찍 저문다. ‘온기’를 찾아 발걸음도 빨라진다. 물론 겨울다운 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눈 내린 설산이나 숲길을 찾아 들어가거나 빙벽타기·스키·겨울축제 등만 골라 추위보다 더한 짜릿함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새겨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일이다. 목적지는 경기도 연천군이다.
연천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사람이 살기 전과 후의 한반도 역사가 모두 숨어 있다. 5억년 전 한반도가 적도 부근에 있었고 공룡이 번성하던 1억년 전에는 날마다 화산이 분화하던 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연천 곳곳에 남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석기시대에 도구를 이용했던 머리 좋은 인류도 여기 있었다. 연천은 한반도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살았던 곳이다. 그야말로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언제 가도 좋다. 하지만 연천의 겨울은 다르다. 다른 계절에는 다가갈 수 없던 얼음절벽, 꽁꽁 언 한탄강에 손과 발을 디딜 수 있다. 우리 땅의 역사를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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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만든 풍경 중 압권 ‘재인폭포’
연천은 국가지질공원이다. 정확하게는 한탄·임진강 국가지질공원이다. 국가지질공원은 환경부 장관이 인증한 공원을 말한다. 지구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뛰어난 지역을 교육이나 관광 등에 활용하기 위해 ‘자연공원법’에 따라 인증한 공원이다. 조건도 까다롭다. 지질명소를 20개 이상 포함해야 하고 지구학적 중요성과 경관적 가치, 희귀한 자연적 특성까지 지녀야 한다. 고고학적·생태적·문화적으로도 우수해서 보전할 필요가 있어야 함은 물론, 지질유산을 보호하는 일이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한국에 국가지질공원이 단 7곳만 있는 이유다. 한탄·임진강 국가지질공원은 이름에서 보듯 한탄강과 임진강, 연천을 관통하는 차탄천 주변에 지질명소가 흩어져 있다. 대부분 용암이 만든 풍경이다.
용암이 만든 풍경 중 단연 압권은 재인폭포다. 정식명칭은 추가령 구조곡이다. 연천 지질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5층 빌딩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맑은 물줄기와 주상절리 협곡에 흰눈까지 어우러져 다른 계절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인다. 지형은 한탄강과 비슷하다. 일반적인 폭포와 달리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들어서 있다. 쉽게 말해 땅이 꺼진 곳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폭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규모도 거대하다. 너비가 30m, 높이는 18.5m에 달한다. 여름에는 시리고 맑은 물살을 토해내지만 지금 같은 겨울에는 물살이 얼어 시간이 멈춘 듯하다.
여기까지는 현재의 재인폭포 모습이다. 시간을 50만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재인폭포는 한탄강으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였다. 참고로 지금의 재인폭포는 한탄강에서 360m 떨어져 있다. 아마도 조금 더 웅장했으리라. 한탄강 근처의 용암 두께가 지금의 재인폭포보다 두껍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포는 점차 뒤로 이동했다. 폭포의 침식작용으로 현무암의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재인폭포는 계속 뒤로 물러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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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개 돌베개 모은 ‘베개용암’
고문리 협곡을 탐사하려면 해설사나 연천군에 미리 연락해야 들어갈 수 있다. 시작은 고문리 양수장. 재인폭포를 나와 고문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고문리 양수장이다. 지역민에게는 ‘소수력발전소’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용암이 만든 주상절리와 판상절리가 겹친 현무암 절벽은 물론, 한탄강변의 얕은 물이 만나 들끓으면서 표면이 거칠게 굳은 ‘클링커층’, 용암이 흐르기 이전 한탄강 바닥에 쌓였던 자갈층인 ‘백의리층’ 등 다양한 지질층을 만날 수 있다. 절리는 외부의 힘으로 암석이나 지층에 금이 간 것을 말한다. 주상절리는 절리가 수직방향으로 나타난 것이고 판상절리는 가로로 나타난 것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현무암 지형에서는 주상절리가 많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궁신교를 건너 표지판을 따라 신답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강을 가로지르는 잠수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의 영평천을 건너면 ‘아우라지 베개용암’을 무더기로 볼 수 있다. ‘아우라지’는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을 의미하는데 이곳에서는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난다. 사실 베개용암을 가까이서 보려면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 역시 미리 연천군의 허락을 얻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베개용암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루터 바로 앞 전망대에서 볼 수 있다. 육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망대의 망원경으로 멀리서나마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베개용암은 현무암이 수중에서 굳어졌음을 말해주는 세계적인 지질유산. 마치 수백개의 돌베개를 모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빠르게 식을 때 표면이 둥근 베개모양으로 굳으면서 생긴다. 대개 깊은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데 아우라지 베개용암은 내륙의 강가에서 발견돼 매우 희귀한 자료로 꼽힌다.
아우라지 베개용암에서 재인폭포 방향으로 가면 궁신교 아래 좌상바위와 만난다. 장탄리 한탄강변에 무려 60m나 솟은 바위다.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 말 용암과 화산가스 등의 분출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살바위’라는 흉측한 이름으로 불렸다. 2015년 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좌상바위라는 제 이름을 찾게 됐다. 다양한 시기의 암석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하지만 일반인은 구분이 거의 불가능. 지질해설사와 동행하면 제대로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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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암석박물관 ‘은대리 습곡구조’
은대리 습곡구조는 차탄천 왕림교 아래에 있다. 속칭 ‘야외 암석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암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억년 전 선바위와 비교적 ‘젊은’ 신생대 제4기(약 55만년 전~12만년 전)의 현무암 주상절리까지 다채로운 지질을 만날 수 있다. 왕림교를 중심으로 수직의 주상절리와 판상절리 지대가 나뉜 것도 이채롭다. 차탄천이란 이름은 수레여울에서 유래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고 연천으로 낙향한 친구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연천으로 가던 중 이 여울에서 수레가 빠졌는데 수레여울을 한자로 옮기면서 차탄천으로 불리게 됐다.
에움길을 따라 나서면 차탄천 일대 지질 명소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에움길 전체길이는 약 9.9㎞. 그 가운데 마산면 동이리 주상절리는 임진강 주상절리의 백미로 꼽힌다. 높이 40~50m의 주상절리가 1.5㎞ 길이로 뻗어 있다. 한눈에 보이는 길이만 1.2㎞에 달한다. 이처럼 직선으로 뻗은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은 국내에 더이상은 없다. 이밖에도 전곡읍 고포리, 군남면 왕림리의 경계에 있는 차탄강 주상절리는 절벽처럼 생긴 것 말고도 강변 바닥 근처에 절리를 형성한 것이 매우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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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 길=경기 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 방향으로 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 나들목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 국도를 타고 가면 연천이다.
△먹을 곳=참게와 메기,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인 매운탕을 잘하는 불탄소가든(031-834-2770)이 유명하다. 한탄강오두막골(031-832-4177)은 가물치구이와 민물새우탕이 유명하다.
△가볼 만한 곳=‘2017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가 한창이다. 2월 7일까지다. 가족과 함께 한번 들러봄 직하다. 축제의 주제는 ‘겨울 연천에서 신나게 놀자’다. 대형 눈썰매와 다양한 색깔의 초대형 눈조각, 긴장감 넘치는 눈썰매장, 얼음마을과 얼음놀이터 등 겨울을 즐길 만한 것들이 가득하다. 주말에는 엄마·아빠를 위한 7080 공연도 열린다. 한반도 구석기시대 체험도 가능하다. 특히 구석기인의 생활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바비큐 구워먹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행사다. 북한이 바라다보이는 최전방 태풍전망대와 전곡선사박물관 등 문화관광명소도 있다. 민통선 안쪽의 빙애여울 등 임진강 상류는 두루미의 월동지역. 태풍전망대 가는 길에 어렵지 않게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 세계에 2700여마리만 남았다는 희귀종과 만나는 느낌이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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