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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는 ‘재건축 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면,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짧은 임대기간만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계약 체결을 사실상 거부한 것과 같다’고 봤다. 재건축 시점이나 단계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피고가 2025년 8월까지만 임차할 수 있다는 조건을 고수함으로써 신규 임차인이 계약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일부 시설을 직접 반출해 처분한 점, 그리고 장기간 영업을 통해 일정 부분 투자비를 회수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정 등을 참작했다. 그 결과 원고의 손해를 ‘점포의 실제 권리금 평가액 중 일부’로 한정해, 손해배상액을 약 2000만원대 수준으로 제한했다.
또한 대법원은 ‘임차인 보호라는 취지와 재산권 행사의 한계를 구별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최대한 보장하는 법이지만, 이는 임대인이 명백히 부당한 행위를 함으로써 임차인의 권리금 수령을 방해했을 때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임대인이 재건축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그 계획을 일관되게 알렸다면, 그로 인해 임대차계약 체결이 제한됐다고 하더라도 불법적인 방해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도심 재개발과 재건축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임대차관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재건축 예정인 상가건물의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사전에 계획을 명료하게 전달하고,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투명하게 설정해야 한다”라는 교훈을 남긴다. 재건축 시점이 막연할 경우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대가 왜곡될 수 있고, 반대로 임대인도 향후 공사를 위한 비용과 기간을 명확히 안내하지 못하면 분쟁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양측 모두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서로 간에 명문화된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불필요한 소송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생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행정법원·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서울지방변호사회 청년변호사특별위원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