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비호감’… 대선 후보 벽보·현수막 수난시대

선거 벽보, 현수막 등 훼손신고 잇달아
"장난으로", "술김에"…464명 선거사범 경찰 수사선상
"코로나19 힘들고, 후보도 싫어 분풀이" 분석
훼손시 2년 이하 징역 혹은 400만원 이하 벌금
  • 등록 2022-03-01 오후 3:39:45

    수정 2022-03-01 오후 9:00:40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술 마시고 낙서하고, 얼굴에 점을 찍고… 아직도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벽보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서울 한 지구대 경찰)

지난 23일 오후 대구 달서구 도원동 한 대로변을 따라 아파트 담장 등에 첩부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벽보가 훼손된 채 방치돼 있다. (사진=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 벽보와 현수막 등을 훼손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유력 후보들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술김에’ ‘홧김에’라도 선거 벽보 및 현수막을 훼손했다간 공직선거법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15일부터 선거사범 집중 단속에 들어간 이후 열흘만인 지난달 25일까지 총 213명이 선거 벽보와 현수막 등을 훼손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 은평경찰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벽보를 손으로 잡아 뜯은 50대 남성을 체포했다. 이 남성은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역 인근에서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은평구 응암동에서도 이 후보의 벽보가 찢어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서울 강북구에선 이 후보의 현수막에 불을 붙인 50대 남성이 현장에서 붙잡히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벽보도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아파트단지에 걸려 있던 벽보가, 이에 앞선 21일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공사장 인근의 벽보가 찢겨나갔다.

선거 공보물이 붙는 곳은 아파트 단지 앞이나 대로변 등 유권자들의 왕래가 잦은 장소다. 이전보다 폐쇄회로(CC)TV 설치가 늘어나 벽보를 망가뜨리면 붙잡혀 처벌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서초구의 한 파출소 소속 경찰은 “훼손뿐만이 아니라 강풍 등으로 인해 벽보가 떨어진 신고도 자주 접수되고 있는데, 의도적인 훼손의 경우 현장 감식과 더불어 CCTV 확인이 필요하다”며 “훼손은 사람이 없는 밤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다른 경찰관 역시 “선거 소음 관련 민원과 벽보 보수 등으로 인해 현장에 나가면 ‘보기 싫은데 (망가진 채) 내버려두라, 혹시 해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 등에 대한 ‘불만’이 투영된 결과라고 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인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민들의 심사가 편치 않으니 벽보와 현수막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 측면이 있다”면서 “정치 혐오의 방증인 동시에 혐오를 부추기는 행위로 해선 안될 일”이라고 했다.

선거 관련 벽보 훼손은 처벌이 가능한 엄연한 범죄의 영역이다. 공직선거법 제 240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나 현수막을 훼손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청을 포함, 관서에 선거경비통합상황실을 운영해 선거 관련 민원과 사고에 대처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건 범죄로, ‘술에 취했다’, ‘장난으로 그랬다’ 등으로 무마될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번 대선 관련해 지난달 28일까지 총 245건(464명)의 선거 관련 사건을 접수, 현재 219건(426명)을 수사하고 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정례간담회에서 “초기엔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등의 고발이 많았지만, 최근엔 현수막과 벽보 훼손, 선거 유세 등의 폭행 사건 등이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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