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지난 9월 14일, 자신의 일터인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역사 안에서 스토킹범 전주환(31)으로 인해 20대 여성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 100일째를 맞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터 내에서 여성 노동자가 겪는 ‘젠더 폭력’은 만연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터의 약자인 여성과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등 취약한 곳에 집중되는 폭력에 대해 사용자와 정부가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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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신당역 사건 100일을 맞아 젠더 폭력 제보 25건을 분석, 일터 내 여성이 원치 않는 구애나 신체접촉부터 스토킹과 성희롱 등 다양한 ‘젠더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신당역 사건을 계기로 ‘직장 젠더 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해 제보를 받았다. 3개월간 총 25건의 사례가 접수, 이를 분석한 결과 강압적 구애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원치 않는 신체 접촉(6건) △외모 통제(5건) 순으로 나타났다. 악의적 추문을 퍼뜨리는 행위(3건)와 성차별·기타(3건)도 있었다. 이중 사업장에 상담을 요청한 것은 11건이었지만, 모두 신고 후 불리한 처우를 당하거나(7건), 신고 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사용자의 의무 위반(4건)에 그쳐 제대로 된 처벌은 없었다.
‘강압적 구애’는 팀장이나 사장 등 상급자에서 하급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방에서 일하는 직장인 A씨는 “서울 본사의 사장이 자꾸 사적 만남을 요구하고, 애인 사이로 지내자는 연락이 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원치 않는 구애는 물론, 신체 접촉과 외모 통제를 당하기도 한다. 직장인 B씨는 “상사가 어깨 마사지를 요구하는데, 팀 내 최고 권력자라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C씨는 “사장이 업무를 가르쳐준다며 고의로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더니, 문제 제기와 공식적인 사과 요구도 거절당했다”고 제보했다. 화장이나 염색 등 외모를 통제하려는 시도,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 등도 있었다.
| (자료=직장갑질119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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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직장 내 성범죄는 일터 내 약자인 여성과 비정규직을 향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 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을 통해 직장인 1000명에게 직장 내 성범죄 경험을 묻자 10명 중 6명 꼴(57.2%)의 직장인들은 성희롱부터 성추행·성폭행, 스토킹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직장 내 성희롱 경험은 여성(37.7%)이 남성(22.5%)보다 높았고, 비정규직(33.8%)이 정규직(25.8%)보다 높았다. 여성 비정규직은 10명 중 4명(38%)이 성희롱을, 3명(29.5%)이 성추행·성폭행을 겪었다고 답했다.
소규모 사업장 역시 취약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중 30.7%는 최근 3년간(2019년 4월~2022년 4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일터 내 젠더 폭력에 대해 사용자는 물론, 고용노동부 등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은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일터 내 젠더 폭력, 성범죄는 직급상 우위에 있는 자가 권력에 기반을 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며 “노동자 보호 의무가 있는 사용자와 정부 차원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박 노무사는 “성희롱 예방 등 법정의무교육 이수를 통해 폭력을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 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