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찔린 러시아 본토 방어 고전…우크라 점령지 확대 진격

"우크라군, 러 본토 30km까지 진군해 교전"
자포리자 원전 화재 '핵테러' 위협…시비 공방
"푸틴 도저히 용납 못할 것"…전쟁 격화할 듯
  • 등록 2024-08-12 오후 4:44:33

    수정 2024-08-12 오후 7:10:32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러시아의 침공으로 2년 반 동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허를 찌르는 본토 공격으로 모처럼 사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대반격’에 실패한 이후 수세에 몰렸던 우크라이나가 전쟁의 불길을 러시아 본토로 옮기겠다는 목표 아래 진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상 대응에 실패한 러시아는 공격 수위를 높이면서 향후 전쟁의 양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가운데 군용 차량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러시아, 우크라군 몰아내지 못하고 고전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본토 진격 이후 6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국경에서 30㎞ 이상 떨어진 곳까지 진격해 쿠르스크주의 소도시 수드자와 주변 여러 마을을 장악하며 점령지를 넓혀가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밤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 본토 공격을 처음으로 확인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정의를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침략자에게 필요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보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군이 현재 국경에서 60㎞ 떨어진 지역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 지역의 여러 정착지를 점령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관공서에서 국기를 제거하는 영상 등을 공개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 내 30㎞까지 진격해 교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 기동대의 돌파 시도를 저지했고, 병력과 무기를 공격해 모든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파괴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누적 병력 손실은 최대 135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본토에서 교전으로 러시아 측 민간인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현재 총 8만4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쿠르스크 국경 지역에서 대피했다고 보도했다.

1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한 영상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사진=AFP)


자포리자 원전 냉각탑에 화재…핵위협 고조

이번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진격하고 있을 때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러시아가 본토 공격을 허용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수 천명의 군인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애초 러시아 국경 경비대가 처음 보고한 소규모 침입보다 훨씬 큰 규모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 본토에 대한 최대 규모 공격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양측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러시아가 점령한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 단지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서 이날 화재가 발생해 ‘핵 위협’이 고조되기도 했다.

양국은 서로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러시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가 인근 도시 에네르호다르에 공격을 가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비난한 데 이어 러시아 국영원전기업 로사톰은 우크라이나 측이 ‘핵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지난 6일부터 시작된 본토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에 불을 지르고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포리자 원전을 파괴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핵 재난을 안겨줄 수 있다고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냉각탑 화재에도 폭발 가능성은 없으며, 발전소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 러시아 측에 점령됐으며, 같은 해 9월 원자로 6기 모두가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기점으로 앞으로 전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마이클 클라크 특별연구원은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러시아 침공은 지금껏 젤렌스키 대통령이 내린 가장 위험한 결정”이라면서 “결국은 (러시아군의) 압도적 숫자가 전투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에 침입한 상황이 계속되는 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만이 이와 비슷할 정도로 위험한 반격 전략이었다”면서도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이번 역공은 전쟁을 뒤집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 국방부 대변인도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러시아와 종전 및 영토반환 협상을 벌일 때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같은 해 9월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헤르손, 루한스크, 자포리자 등을 점령했다.

향후 전쟁 양상은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러시아가 본토를 공격받을 수 있다는 변수가 생기면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우크라이나와 수백㎞에 걸쳐 국토를 맞댄 곳에서 방어 태세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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