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로 시행 1년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단 지적이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이윤보다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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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시도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엄정한 처벌을 통해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의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기소된 사례는 11건에 그치고, 실제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전무하다. 법 시행 후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59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3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보수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고 이동우씨의 아내 김금희씨는 “아직 남편의 사건은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어 정당한 처벌은 미뤄지고 있다”며 “모두 힘을 합쳐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외쳤다. 지난해 10월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SPL공장의 강규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도 “노동자를 기계 부속처럼 취급하는 기업 문화를 바꾸고, 제대로 된 처벌과 엄정 수사가 이뤄져야 구조를 바꿀 수 있다”며 목소리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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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산재·재난 유가족과 피해자, 종교·인권·시민사회단체 67곳이 서울 종로구 4·16연대 강당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 및 재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 기자회견엔 중대재해법 강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훈 작가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을 설립한 김미숙 이사장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대로 적용해 비극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부모들은 저처럼 삶 자체가 아픔일텐데 정부와 기업은 이 죽음들을 당연하다는 듯 외면하고 있다”며 “정권은 ‘노동 개혁’을 명목으로 지난해부터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이어오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울먹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모인 67곳의 단체들은 정부에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제대로 된 법 적용과 기소·처벌 △소규모 사업장에도 제대로 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중대재해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이들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위로와 응원을 보내달라고 시민들에 호소했다.
한편 이날 민주노총은 오후 5시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벌 대상이 된 1호 사업장인 삼표산업 사망 노동자 1주기 추모 문화제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