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소녀 가장에게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 안전을 무시하고 이윤을 추구한 기업 때문에 일어난 ‘산업 재해’다.”
|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이 26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L 사망 사고 관련 기자 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권효중 기자) |
|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이 26일 오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L의 산업재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번 사고를 ‘소녀가장의 비극적인 사건’이 아닌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로 인해 일어난 ‘산업 재해’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향후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엄격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SPC 계열사인 SPL 공장에서 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상반신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허영인 SPC 회장은 재발 방지 등을 약속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사과문 발표 이틀만인 지난 23일에는 SPC의 다른 계열사인 샤니 성남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해 공분이 커졌다. 이에 시민들을 중심으로 SPC 계열사 불매운동 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모인 이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이 기업의 지나친 이윤 추구와 이 과정에서 일어난 ‘안전 불감증’에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민우회의 여성노동팀 ‘행크’ 활동가는 “20대 노동자는 2교대로 공장에서 야간 노동을 계속해왔고, 2인 1조라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도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사고를 당했다”며 “이는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발생한 산업 재해”라고 비판했다.
이 사고를 ‘소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이라 보도하는 행태 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행크 활동가는 “사고를 당한 노동자를 ‘소녀 가장’으로 부르기 시작하고 가족사와 사는 곳, 주거 형태와 친구관계 등 사적인 사실이 낱낱이 보도되고 있다”며 “이는 안전장치와 규제, 쉴 권리 등 SPC가 지켜야 할 것들을 무시해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SPC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선언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운동’의 권영국 변호사는 “SPC의 문제는 이번 사고뿐만이 아니라 파리바게뜨 제빵사 불법 파견, 던킨도너츠 공장 위생 문제 등에서도 거듭돼왔던 것”이라며 “기본적인 안전 조치 등을 무시해왔던 만큼 산재 사고가 사망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인명을 경시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비롯해 기본적인 권리를 짓밟는 SPC 그룹의 제품을 더이상 소비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자회견 이후 이들은 이날 SPC의 주요 브랜드들의 로고가 담긴 종이를 찢고 “노동탄압 악질 기업 SPC 불매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한편 시민들 사이의 불매운동도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25일에는 제품 사진을 찍어 바코드를 입력하면 SPC 계열사의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는 웹페이지 ‘예스피씨’가 온라인에 공개됐고, 이날엔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깜빵집’이라는 웹페이지가 만들어졌다. ‘깜빵집’ 측은 “남양유업 불매 운동을 돕기 위한 서비스 ‘남양유없’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