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서울 지방검찰청들이 잇따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중재안에 반대 뜻을 밝혔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가 중요 사건을 해결한 사례들을 앞세우면서 검수완박이 현실화하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마들로 북부지방검찰청에서 가진 ‘검수완박’ 관련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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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문은 서울북부지검이 열었다.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이 직접 나서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검수완박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배 지검장은 “법안이 시행되면 검사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을 수 없게 되고, 기록 너머에 숨겨져 있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며 “검찰의 수사기능이 완전히 배제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북부지검이 내세운 사건은 작년 4월 검찰이 수사를 맡았던 ‘노원구 세 모녀 사건’. 배 지검장은 “경찰에서 송치된 피의자 김태현이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하자, 검사는 수십 시간에 걸친 보완수사로 계획 범행임을 밝혀냈고, 결국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 지검장은 “만약 검수완박이 시행되면 제2의, 제3의 김태현 살인사건이 제대로 처리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틀 뒤엔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서부지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심재철 검사장 등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들은 25일 입장문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반대한다”며 “단순한 검찰 조직의 유지와 존속에 관한 게 아니라 국가의 수사 기능, 형사사법체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 역시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영역은 다수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권력자들의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국민 보호를 반대 이유로 들었다. 남부지검에선 라임 사모펀드 사태, 머지포인트 사건에서의 검찰 ‘활약’을 예로 들며 박성훈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장 등이 검수완박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에선 양동훈 차장검사를 비롯한 간부 검사들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내용의 검수완박 중재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는 데에 우려를 표한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 이곤호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강력범죄전담부 부장검사가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화금융사기 보완 수사 뒤 기소 관련 기자회견에서 수사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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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엔 서울동부지검이 최근 기소한 보이스피싱 사건 성과를 알리면서 검수완박 반대 행렬에 가세했다. 전날 오후 기자회견 계획을 급작스럽게 공지한 동부지검은 작년 7월 현금 전달책 1명이 불구속 송치돼 끝날 뻔했던 사건에서 단서를 파악, 수사를 이어가 현금전달책 4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특화된 금융 수사, 포렌식 수사 등을 통해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곤호 동부지검 강력범죄전담부 부장검사는 “중재안이 통과되면 (이러한 보이스피싱사건) 여죄 수사가 불가능해지고, 국민의 피해 구제도 사실상 곤란해진다”며 “중재안처럼 보완수사 범위가 ‘단일 사건’으로만 한정되면 이 사건처럼 국외반출책 수사도 법률적으로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역시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n번방 조주빈 사건’을 예로 들고 “수사지휘권 폐지에 이어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 축소, 직접수사의 단계적 폐지는 실체적 진실 규명과 인권보호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한편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22일 여야 회동 때 ‘검수완박’ 중재안을 내놨고 여야는 합의 처리키로 뜻을 모았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분리를 원칙으로 6대 중요 범죄(공직자·선거·대형참사·방위사업범죄·부패·경제) 수사권 중 부패와 경제 범죄를 뺀 나머지 수사권을 즉시 폐지하는 게 골자다. 부패와 경제 범죄 수사권도 향후 18개월 내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 후 폐지토록 했다. 그러나 선거사범 수사 등이 먼저 빠진 데에 ‘야합’ 논란이 일면서 국민의힘이 합의를 번복, 국회에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