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고(故) 변희수 하사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서울 지하철 역사 내 광고가 7개월여의 심의 끝에 걸렸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지연된 광고가 있는 한편, 3·1절엔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광고가 버젓이 역사 내 게시됐다. 서울교통공사의 광고 심의 ‘기준’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추모 내용이 담긴 지하철 광고 도안 (사진=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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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엔 변희수 하사의 1주기 추모 광고가 걸렸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모금을 주도해 걸게 된 광고다. 변 하사는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으로,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 처리돼 소송을 진행하던 중 숨졌다. 다만 사후 승소해 ‘만기 전역’으로 정정됐다.
공대위는 지난해 8월 변 하사의 복직소송을 계기로 모금을 진행 후 광고 심의를 요청했으나, 서울교통공사는 9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공사의 중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등의 이유를 들어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공대위는 재심의를 요구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으나 공사는 다시 광고 게시를 불승인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이뤄진 평등권 침해의 차별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진정을 인용, 공대위에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공사는 ‘버티기’를 하다 결국 7개월여 흐른 지난달 21일에야 광고 승인을 결정했다.
‘엄격한 광고 심의’를 해온 공사는 정작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광고는 걸러내지 못했다. 3·1절인 지난 1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담긴 광고가 2호선 삼성역에 걸렸다. 걸그룹 ‘아이즈원’ 출신의 일본인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광고로, 광고 하단에 선이 뻗어 가는 모양새가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자 서울교통공사는 게시 당일 바로 광고를 내렸다.
서울교통공사의 역사 내 광고 승인 기준이 고무줄이란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변 하사를 위한 광고 모금에 참여한 직장인 성모(30)씨는 “(공사가) 차별로 고통받은 이에 대한 추모 광고는 7개월이나 지연시키고, 아이돌 광고 등은 쉽게 허용해 노출해주는 차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공대위 측도 “(공사는) 반성과 시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일반 상업광고와 의견광고를 구분해 심의하면서 신중한 판단을 거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공사에 따르면 일반적인 상업광고는 내부 도안심의 위원이 3~5일의 심의를 거쳐 게시 여부를 결정하지만, 개인 및 조직체의 의견을 표현하는 ‘의견광고’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광고심의위원회를 거쳐 최대 한 달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명단은 비공개로 부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생일 축하 광고는 일반 상업광고로, 변 하사 광고는 의견광고로 분류돼 각각 심의를 거쳤다”며 “외부 전문가들은 인권, 정치, 사회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풀(Pool)에서 선정해 공정한 심의를 거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욱일기 논란이 있던 광고는 문제를 인지해 내렸고, 변 하사의 광고 역시 1심 재판이 종결된 이후 외부 심의를 거쳐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린 것으로 공정한 심의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