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정적감만'…사고가 할퀴고 간 광주아파트 붕괴현장

[르포]발길 끊긴 붕괴사고현장, 구조대·취재진 등 떠나자 을씨년스러워
주민들 "지금도 마음 아파"…유족들 "현산, 진정성 있는 사과·대책 필요"
입주 예정자도 막막…인근 상인 "구체적 대책 나올 때까지 자리 지킬 것"
  • 등록 2022-02-10 오후 5:42:20

    수정 2022-02-11 오전 10:00:37

[광주=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좁은 골목을 메우던 소방차와 중장비 차량, 인근 주차장을 채웠던 취재 차량은 대부분 떠났다. 외벽이 무너져내린 아파트 건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던 노란 리본들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과 인근 상인들이 머무는 천막만 남았다. 발길이 뚝 끊긴 사고 주변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참사를 잊지 않고 ‘사고 그 이후’를 얘기하려는 이들만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10일 오후 광주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의 근처 모습, 천막들 너머로 붕괴된 아파트의 일부가 보인다. (사진=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한 달여만에 종료한 수색작업…남은 문제 해결에 한숨만

지난달 11일 공사 중이던 광주 화정동의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외벽과 내부 구조물들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콘크리트 더미들에 묻혔던 실종자 6명은 그 사이 모두 숨진 채 구조됐다.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광주 화정동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 일대는 한 달 전보다 정리된 모습이었지만 사고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선명하고 참혹했다. 사고가 난 201동 건물은 상층부 크레인만 철거됐을 뿐 한 달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철거 후 재시공까지는 이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터였다.

드문드문 인근 거리를 지나던 행인은 걸음을 멈추고 아파트를 올려다봤고 일부는 현장 앞 울타리에 걸린 노란 리본을 들여다본다. 한 60대 여성은 “사고 한 달이 지나니 이제는 이전만큼 붐비지 않는 것 같다”며 “정적감이 무겁고 쓸쓸하다”고 했다. 인근 카페 주인은 역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가 났을 당시가 생생하다”며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10일 사고 현장과 가까이 있던 붕괴사고 피해자의 가족 천막이 주차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진짜 사고 수습은 지금부터

사고 발생 후 29일째였던 지난 8일 비로소 실종자 6명 수습이 끝났다. 진짜 사고 수습은 지금부터다. 여전히 사고의 원인 규명과 수습 남은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사과와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기 전까지 장례 절차를 무기한 연기했다. 추모공간 설치 등에 대해선 서구청, 광주시 등과 합의해나갈 예정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 근처에 천막을 차리고 현장을 지켜왔다. 구청에서 따로 마련해준 숙소를 찾지 않고 한 달여 밤낮을 천막 하나에 의지하며 가족을 기다려왔다. 가족이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후엔 시공사에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하며 천막에서 버티는 중이다. 피해자 가족협의회 대표인 안 모씨는 “현산은 구체적인 보상과 대책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며 “사고를 낸 이들이 책임질 수 있게 정치권과 사회에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고는 ‘사회적 참사’인 만큼 시민과 함께 추모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며 “11일부터는 무등주차장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서구청은 사고 후속 조치를 전담하기 위해 상시 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다. 현재도 현장에서는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민원을 받고 있으며 경찰 역시 사고 관련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해 책임자 규명을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인근 상인 역시 사고 이후 책임감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사고 현장 근처로 아직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하이빌 도매상가를 포함해 상인들도 천막 하나를 세웠다. 박태주 사고피해대책협의회 대표는 “주변 상인들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원을 제기했고 문제를 지적했는데 결국 사고가 터지고 여전히 대응이 미진해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때까지 현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입주 예정자들도 막막한 상황이다. 한 입주 예정자는 “철거에만 최소 6개월~1년이 걸리고 입주까지는 3~4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데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이승엽 예비입주자 협의회 대표는 “1, 2단지를 모두 철거하고 재건축해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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