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통상임금 정의에서 ‘고정성’ 요건을 제외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지급 조건과 최소근무일수 조건은 모두 무효이며,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3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립한 기준을 11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정치 혼란, 내수부진에 설상가상 인건비까지”
판결 직후 재계는 잇달아 유감을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1년간 지켜 온 노사간 합의를 무효로 만들었다”며 “현장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시키고, 향후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내수부진과 수출증가세 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되어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내수부진과 수출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임금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예측치 못한 경영 리스크를 가중시켜 고용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여건과 맞물려 투자 등 우리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향후 노사 간 추가 법적 소송 발생할 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년 전 판결에서 인정한 임금체계의 유연성이 이번 판결로 다 지워져버리고, 지나치게 경직된 체계로 전환됐다”며 “이러한 혼란 속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간 수백~수천억원 규모의 소송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중소기업 연봉 격차 더 벌어져…최대 340만원
이번 판결의 또 다른 문제는 대·중소기업 간 실질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기상여금의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임금 증가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30~299인 사업장의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월 13만4000원, 연간 160만6000원의 임금 총액 증가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2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에는 임금 총액 증가분은 월 1만7000원, 연간 20만8000원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다니는 A씨의 연봉이 361만원 늘어나는 동안 29인 이하 사업장에 다니는 B씨는 불과 20만8000원 느는 것이다. A씨와 B씨의 연간 연봉 격차는 340만원 이상이다. 경총 관계자는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그 혜택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5.1%에 불과한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중 일부에게만 집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적 송사로 큰 파장이 발생하는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년 전 판결이나 현재 판결 모두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것이지만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게 된 점은 맞다”며 “매번 법원 판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재계와 국회가 힘을 모아 입법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