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호 기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중국 ‘상하이 쥔스바이오사이언스’(君實生物, 쥔스바이오)가 개발한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 ‘로크토르지’를 승인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제약바이오기업이 개발한 면역항암제 중 최초로 미국 규제 문턱을 넘어선 사례다. 국내 티움바이오(321550)와 큐리언트(115180) 등 바이오텍의 면역항암제 개발이 임상 1상 단계에 머무른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 규제당국의 자신감과 거대한 내수 시장 등이 자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쥔스바이오, 亞기업 최초 美서 면역항암제 출시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아시아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에서 면역항암제를 승인받은 쥔스바이오가 회자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쥔스바이오가 자사 로크토르지(성분명 토리팔리맙, 중국제품명 투오이)이 비인두암 치료제로 FDA로부터 시판 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히면서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4일 “임상 품질 문제에 직면해온 중국 제약사에 획기적인 사건이다”고 평했다. 중국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내 면역항함제 공급 위기 문제로 자국의 혁신적이 항암제가 역사적 진출을 했다”고 했다. 중국에서 개발된 의약품을 평가절하해 온 미국의 기조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1세대 화학항암제와 2세대 표적항암제 시대를 거쳐 201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3세대 면역항암제다. 암세포는 체내 면역작용을 회피하기 위해 PD-L1 등와 같은 일부 막단백질을 발현시킨다. 이런 막단백질은 T세포 표면의 수용체(PD-1)와 결합하면, 면역세포가 활성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나 T세포 표면에 있는 PD-L1이나 PD-1, CTLA4 등을 타깃하는 항체치료제를 의미한다. 2011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여보이’가 최초의 면역항암제가 됐다. 이후 BMS의 ‘옵디보’와 머크의 ‘키트루다’, ‘바벤시오’, 스위스 로슈의 ‘티쎈트릭’,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 등까지 6종의 면역항암제만이 미국에서 승인된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승인된 7번째로 승인된 면역항암제인 로크토르지는 PD-1 억제기전을 가졌다. 로크토르지는 2012년에 설립된 쥔스바이오가 6년만에 자국에서 시판에 성공한 약물이다. 키트루다나 옵디보 등의 최초 적응증인 흑색종 치료제로 중국에서 승인된 로크토르지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성을 확대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이 같은 시장 전략을 이어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과 차이는?...“中당국의 대응과 거대한 내수 시장”
이중 베이진의 테빔브라(성분명 티스렐리주맙)는 지난 9월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을 획득하기도 했다. 테빔브라는 중국에서 흑색종과 비인두암 등 10가지 고형암 환자에게 쓰이고 있다. 테빔브라의 미국 진출은 현재 현지 실사 지연으로 무기한 연기된 상태로 알려졌다.
또 이노반트는 미국 일라이릴리에 10억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PD-1 항체 기반 면역항암제 신약후보 ‘신틸리맙’에 대해 지난해 3월 FDA로부터 “문서 보완”을 이유로 허가 반려된 바 있다.
국내 항암제 개발업계 한 대표는 “여보이 개발에 일본 오노약품이 관여했던 것을 제외하면, 쥔스바이오가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낸 것은 분명 돋보인다”고 “아직 미국 진출은 못했지만 시판 데이터를 충실히 쌓고 있는 베이진과 이노반트 등도 글로벌 진출 가능성이 높은 후보다”고 평가했다.
면역항암제 개발 바이오텍의 한 임원은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규제당국이 이에 맞춰 신약에 대해 적극 장려해 임상 진행을 허가하고 있으며, 자국 내 시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쥔시바이오의 로크트로지는 중국에서 지난해 7억3600만 위안(한화 약 1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대비 79% 성장했다. 같은 기간 회사의 총 매출(14억5300만 위안)의 과반을 차지했다. 회사 측은 “지난해 22억8400만 위안(한화 약 4100억원)을 50여 가지 물질의 연구 및 임상에 쏟아부었다”고 밝히고 있다.
|
K-바이오텍 신개념경구용 면역항암제 개발 시도
국내에서는 큐리언트(115180)와 티움바이오(321550) 등 바이오텍을 중심으로 신개념 경구용 면역항암제 개발에 뛰어드는 추세다. 이들은 자체 후보물질의 시판을 자력으로 수행하기 보다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최대한 기술수출하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큐리언트는 지난 7일 미국면역항암학회(SITC)에서 경구용 면역항암제 후보 ‘아세릭세티닙’에 대한 임상 1상 연구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이 약물은 세 가지 인산화 효소를 저해해 암 조직의 면역 회피 기작을 저해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티움바이오 역시 이달초 SITC에서 경구용 면역항암제 ‘TU2218’에 대한 미국과 한국 등에서 진행한 단독 임상 1a상에서 나온 안전성 및 내약성을 확인한 결과를 공개했다. 해당 물질은 일반적인 면역항암제와 달리 암세포가 면역세포 활성을 저해할 목적으로 내뿜는 형질전환성장인자베타(TGF-β)를 줄이는 기전과 혈관생성인자(VEGF)를 동시에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움바이오 측은 머크 또는 베이진과 협약을 맺고 이들로부터 각각 키트루다와 테빔브라를 무상 제공받아, TU2218과 병용투여하는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이중 머크의 키트루다와 TU2218을 병용하는 임상 1/2상을 미국과 한국에서 승인받아 수행하는 중이다.
티움바이오 관계자는“베이진과는 협약을 맺었지만 실제 임상을 승인받은 건 없다”며 “면역항암 관련해서는 TU2218의 단독임상과 함께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임상 1b상을 여러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CB발행 등 TU2218의 단독 및 병용임상, 다른 후보물질인 TU2670(자궁내막증 유럽 임상 2a상 등)과 같은 현재 확보한 주력 신약 후보물질에 대해 내후년까지 무리없이 진행할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같은 물질을 3상까진 진행하진 않고 최대한 2상까지 진행해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글로벌 파트너에 기술수출을 타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